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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열자가 실존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그가 바람을 타고 다녔다는 황당한 한 줄짜리 기록이에요.
기원전 4세기 도가 사상가 장자(莊子)의 책 「소요유」 편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니며, 보름 뒤에 돌아왔다."
이게 전부예요.
열자라는 사람이 실재했다는 걸 알려주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판타지 한 줄인 거죠.
그러니 학자들이 '이 사람이 진짜로 살았던 건지'를 지금도 논쟁하는 게 당연해요.
누군가의 실존을 증명하는 유일한 자료가 "그 사람은 하늘을 날아다녔어요"라는 SNS 게시글 하나뿐이라면, 우리는 그 사람을 역사 인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물음에 답이 없어요.
그런데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요.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기우야"라고 말했다면, 그 말은 2천 년 전 열자의 책에서 튀어나온 거예요.
기우(杞憂)란 쓸데없는 걱정을 뜻하는 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봐 먹지도 자지도 못한 기(杞)나라 사람 이야기에서 나왔어요.
그 출처가 바로 『열자(列子)』라는 책이에요.
조삼모사(朝三暮四)도 마찬가지예요.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니 화를 냈다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로 바꾸니 좋아했다는 이야기인데, 전체가 같은데 순서만 바꿔도 속는다는 뜻으로 쓰이죠.
이것도 『열자』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겨요.
현대 한국인이 매일 무심코 쓰는 사자성어의 원출처가, 존재 자체가 불확실한 사상가의 책이라는 거예요.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2천 년 전 책 한 권이, 오늘날 우리 말에 이렇게 깊이 박혀 있다니 말이에요.

실재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당나라 황제는 "진짜 사람"이라는 시호를 내렸어요.
742년 당 현종(玄宗)은 열자에게 충허진인(沖虛眞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책을 『충허진경(沖虛眞經)』으로 격상시켰어요.
도교를 국교처럼 받들던 당나라가 이 책을 국가 공식 경전의 반열에 올린 거예요.
'충허진인'을 풀면 "텅 비어 있고 고요한 진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도가 사상의 핵심인 무위(無爲), 즉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삶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칭호죠.
심지어 400년 뒤 송나라 휘종은 여기에 '지덕(至德)'이라는 칭호까지 추가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작가가 실존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못한 책을 국가가 공식 교과서로 지정한 셈이에요.
실존이 불분명한 사상가가 국가 권위까지 얻어버린 거예요.

열자가 썼다는 그 책은, 정작 열자가 살던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청대(淸代)의 고증학자 요제항(姚際恒)과 근대 학자 마서륜, 양백준은 현존 『열자』가 위작(僞作), 즉 다른 사람이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쓴 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어요.
고증학이란 문헌을 꼼꼼히 분석해 원본인지 가짜인지 따져보는 학문인데, 이들이 그 도구로 『열자』를 해부한 거예요.
근거는 구체적이에요.
책 안에 열자가 살았을 기원전 시대엔 없었던 불교 용어와 후대 문물이 섞여 있거든요.
그래서 위진(魏晉) 시대, 즉 기원후 3~5세기 무렵 누군가가 열자의 이름을 빌려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1천 년간 '도가의 3대 경전' 중 하나로 읽혀온 책이, 정작 그 이름의 주인공이 쓴 게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런데도 기우, 조삼모사, 우공이산(愚公移山) 같은 이야기들은 누가 썼든 상관없이 지금도 살아남아 있어요.
우공이산은 앞을 가로막은 산 앞에서 노인이 삽을 들고 "내가 직접 산을 옮기겠다"고 선언한 이야기인데, 이것도 『열자』에서 나왔어요.
결국 남는 건 작가의 이름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예요.
바람을 탔다는 황당한 기록 한 줄에서 시작한 사람이, 그가 쓰지 않았을 수도 있는 책으로 2천 년을 살아남았어요.
어쩌면 위작 논란 따위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던 거예요.
"나는 바람을 탔다"는 한 마디가, 이 모든 것을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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