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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유대 공동체 400년 역사상 가장 가혹한 저주가 23살 청년 한 명에게 내려진 날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해요.
1656년 7월 27일, 암스테르담의 유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안에 나팔 소리가 울렸어요.
그리고 장로들이 양피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죠.
"낮에도 밤에도 저주받을지어다. 누워도 일어나도 저주받을지어다. 나가도 들어와도 저주받을지어다."
이것이 헤렘이에요.
유대 공동체의 파문 선고로, 오늘날로 치면 종교적 사형선고에 가깝죠.
헤렘을 받으면 가족도, 친구도 그와 4큐빗(약 2미터) 이내로 접근할 수 없어요.
가족 단톡방에서 강제 퇴장당하고 부모 연락처까지 전부 차단된 것인데, 그게 법적 효력을 지닌 종교 선언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저주를 내린 사람들이 누구냐는 게 더 기막혀요.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종교재판소를 피해 목숨을 걸고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해 온 유대인들이었거든요.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사람들이, 동족 청년에게 역사상 가장 가혹한 파문을 내렸어요.
게다가 이유조차 공식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무엇을 말했는지, 왜 이 정도로 가혹했는지. 400년이 지난 지금도 확실하지 않죠.
단지 바뤼흐 스피노자라는 이름만 역사에 남았어요. 그 저주와 함께.

그는 철학으로 돈을 받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매일 유리 가루를 들이마시며 렌즈를 갈았죠.
파문 이후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을 떠나 작은 도시들을 전전했어요.
레인스뷔르흐, 포르뷔르흐, 헤이그. 어느 곳에서든 그가 한 일은 같았죠.
현미경과 망원경에 들어가는 유리 렌즈를 직접 손으로 갈아서 파는 것이었어요.
그의 실력은 진짜였어요.
당대 유럽 최고의 과학자였던 하위헌스가 직접 스피노자의 렌즈를 쓰고 품질을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이 결국 그를 죽였어요.
매일 들이마신 유리 가루가 폐를 망가뜨렸거든요.
스피노자는 44세에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공장에서 분진을 매일 마시며 철학 원고를 쓰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게 스피노자에게는 선택이었어요. 어쩔 수 없는 처지가 아니라.

그는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 제안을 받았고, 일주일 만에 거절 편지를 썼어요.
1673년, 독일의 선제후 카를 루트비히가 직접 스피노자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선제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뽑는 7명의 제후 중 한 명으로, 당대 유럽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였죠.
그가 제안한 것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과 정교수 자리였어요.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공식 종교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가르치면 된다는 것이었죠.
스피노자는 거절했어요.
이유는 딱 하나였죠. "그 한도가 어디까지인지 제가 모르겠습니다."
월세 걱정하는 프리랜서에게 대기업이 임원 자리를 제안했는데 '회사 방침 안 어기는 선에서만 자유롭게'라는 조건이 붙은 상황이에요.
그가 거절했어요.
당시 그는 병들어 있었고, 가난했고, 40세였어요.
그 상황에서 그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렌즈를 갈러 갔죠.
"자유롭게 철학할 수 있다"는 말에 조건이 붙는 순간, 그에게 그것은 자유가 아니었으니까요.

그가 남긴 것은 낡은 침대 하나와 161권의 책, 그리고 한 권의 금서뿐이었어요.
1677년 2월 21일, 스피노자는 헤이그의 하숙집에서 44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집주인이 작성한 유품 목록에는 침대 하나(4굴덴), 의자 몇 개, 책 161권이 전부였죠.
4굴덴은 당시 노동자 며칠 치 일당 수준이었어요.
그의 대표작 에티카는 살아 있는 동안 발표되지 못했어요.
친구들이 몰래 출판했고, 1년 만에 네덜란드와 로마 교황청 양쪽에서 동시에 금서 지정됐죠.
"저주받은 철학자"라는 별명은 그렇게 붙었어요.
하지만 150년이 흘렀어요.
독일 철학자 헤겔이 선언했죠.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지 않고는 철학자가 될 수 없다."
파문당하고, 가난하게 살다 죽고, 금서 판정을 받은 그 원고가,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 됐어요.
23살에 저주를 받고 44살에 가난하게 죽은 사람의 이름이, 지금 우리가 읽는 철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올라가 있어요.
과연 그 저주는 누구에게 내려진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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