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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98년 9월, 그의 마당에는 도망갈 말 한 필이 묶여 있었어요.
그는 끝내 타지 않았습니다.
무술정변이 터진 날, 스승 강유위는 일본 공사관으로 숨었고 절친 양계초도 뒤를 따랐어요.
친구들은 말과 배편까지 준비해두고 담사동에게 손짓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어요.
"각국의 변법은 피를 흘려 이뤄졌어. 중국에서 아직 피 흘린 자가 없으니 내가 먼저 시작하겠다."
9월 28일, 베이징 차이스커우 형장에서 그는 참수됐습니다.
향년 33세.
감옥 벽에는 마지막 시를 새겨뒀어요.
"나는 칼을 향해 하늘 보고 웃는다(我自橫刀向天笑)."

그는 청나라 고위 관료의 외아들이었어요.
아버지가 평생 바친 왕조를, 아들은 부수려 했습니다.
담사동의 아버지 담계순은 후베이성 순무, 오늘날로 치면 광역시도 지사급 고위 관료였어요.
아들은 그 권력의 저택에서 태어나 검술을 익혔고, 주변에서는 의협심 넘치는 협객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다섯 살 때 이미 한 번 죽었어요.
전염병이 집안을 휩쓸어 어머니와 형과 누나가 연달아 세상을 떠났고, 담사동도 사흘간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살아난 뒤 그는 스스로를 '칠사(七死)'라 불렀어요.
일곱 번 죽었다 깨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아버지는 아들의 개혁 활동을 끝까지 걱정했고, 결국 아들이 처형된 뒤 관직에서도 쫓겨났습니다.

황제가 시작한 개혁이 황제의 고모 손에 103일 만에 끝났습니다.
1898년 6월, 27살의 광서제는 캉유웨이와 담사동 같은 개혁파를 불러 무술변법을 선포했어요.
과거 시험 축소, 신식 학교 설립, 철도 건설, 군대 개편까지 100여 개의 칙령이 쏟아졌습니다.
청나라가 서양 열강에 줄줄이 패하면서 "이대로 가면 나라가 없어진다"는 절박함이 폭발한 결과였어요.
그런데 9월 21일, 황제의 고모이자 실권자인 서태후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63세 대비가 쿠데타라니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데, 그는 30년간 사실상 중국을 통치해온 인물이었어요.
광서제는 황궁 안 섬에 유폐됐고, 개혁은 전면 폐기됐습니다.
담사동과 동지들은 마지막 거사를 모의했어요.
그런데 믿었던 위안스카이가 서태후에게 밀고해버렸습니다.
위안스카이는 나중에 스스로 황제 자리까지 넘보는 인물로, 처음부터 개혁파를 도구로만 봤던 거예요.
결국 '무술육군자', 개혁을 이끌었던 여섯 명이 체포되고 처형됐습니다.
담사동은 그 여섯 중 하나였어요.

그는 뉴턴과 공자와 부처를 한 권의 책에 묶었습니다.
그 책이 20세기 중국을 뒤집었어요.
담사동이 남긴 유일한 철학서 『인학(仁學)』은 당시 기준으로 완전히 이상한 책이었어요.
유교의 핵심 개념인 '인(仁)',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을 당시 서양 물리학의 에테르 개념과 묶어버렸거든요.
에테르란 19세기 물리학자들이 "빛이 파동으로 이동하려면 뭔가 매질이 있어야 한다"며 상정한 가상의 물질로, 당시에는 최첨단 과학이었습니다.
담사동의 핵심 주장은 이랬어요.
"만물이 에테르로 연결돼 있으니, 강상(綱常) 같은 신분 위계는 물리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강상이란 '임금 앞에서 신하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유교식 사회 질서 논리예요.
오늘날로 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꺼내들고 "그러니까 신분제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요.
그 논리를 최첨단 물리학으로 부수려 했던 겁니다.
이 책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출간되지 못했어요.
처형 이듬해, 일본으로 피신한 양계초가 간행했습니다.
이후 쑨원과 마오쩌둥까지 이 책을 교과서처럼 읽었어요.
도망가지 않고 형장을 택한 33살의 사상가가 쓴 책이, 그를 죽인 왕조 다음 시대 전체를 바꿔놓은 겁니다.
마당에 묶인 채 남겨진 말처럼, 그가 원했던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달려갔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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