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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부처의 손가락뼈 하나 때문에 당나라 수도 장안이 통째로 미쳐 돌아갔다.
819년, 당 헌종이 섬서성 법문사에 보관된 부처 손가락뼈 사리를 궁으로 가져왔다.
법문사는 황실 전용 사찰이었다.
황제는 이 뼈 한 조각을 사흘간 궁 안에서 공양한 뒤, 전국 사찰로 순회시키기로 했다.
황제가 앞장서자 백성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재산을 팔아 제물을 바치는 건 그나마 평범한 축이었다.
더 나아간 사람들은 자기 팔뚝을 불로 지져가며 공양했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특정 의식을 국가 행사로 격상시키자 장관들이 줄을 서서 동참하는 장면이다.
한 사람의 열광이 '공식 절차'가 되어버리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 된다.
장안에서는 그 분위기가 정확히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가 부처를 찬양하는 글을 쓸 때, 한유는 부처의 뼈를 불에 태우라고 썼다.
당시 52세였던 한유는 형부시랑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법무부 차관급 자리다.
그는 황제에게 「논불골표(論佛骨表)」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논불골표는 '부처 뼈에 관해 황제께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내용은 거침이 없었다.
"부처는 애초에 오랑캐의 신입니다. 중국 황제가 섬길 이유가 없어요. 그 뼈다귀는 더럽고 불길한 물건이니 물이나 불에 던져 없애버리십시오."
다른 대신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을 때, 한유만 이 문장을 황제에게 직접 제출했다.
한유는 그 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당대에 '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한유와 비교되어야 했다.
그 날카로운 문장을 아낀 곳이 시나 철학서가 아니라, 황제의 열광에 찬물을 끼얹는 상소문이었다.

한유를 살린 것은 황제의 관용이 아니라 황제의 체면이었다.
헌종은 상소문을 읽고 격노했다.
"당장 처형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재상 배도와 최군이 급히 나섰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직언한 신하를 죽이면 후세 역사가 폐하를 어떻게 기록하겠습니까."
황제는 하루 만에 마음을 바꿨다.
처형 대신 좌천이었다.
좌천이란 직급을 낮춰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내쫓는 것이다.
목적지는 조주, 지금의 광둥성 남쪽 끝 바닷가였다.
장안에서 조주까지는 8천 리, 오늘날 거리로 약 3,200km다.
해고가 확정된 상황에서 인사담당자가 "이 사람 자르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중재해서 지방 발령으로 바뀐 격이다.
목숨은 건졌는데, 그것을 살려준 게 황제의 선의가 아니라 황제의 평판 걱정이었다는 사실이 한유에게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한유는 그해 겨울, 눈길을 뚫고 조주를 향해 길을 떠났다.

부처의 뼈를 비웃은 그 문장가가, 유배지에서는 악어에게 정식 공문을 보냈다.
조주에 도착한 한유는 현지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강에 악어가 들끓어 가축과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악어문(祭鰐魚文)」을 작성했다.
제악어문은 '악어에게 보내는 공식 제문'이라는 뜻이다.
내용은 협박이었다.
"지금부터 7일을 준다. 그 안에 바다로 떠나거라. 머문다면 활과 독화살로 사냥하겠다."
한유는 이 문서를 강가에서 직접 낭독하고, 돼지와 양을 제물로 강에 던졌다.
기록에 따르면 그날 밤 폭풍이 불고 강물이 서쪽으로 흐르더니 악어가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황제 앞에서 부처를 미신이라 꾸짖은 바로 그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
스스로를 합리주의자라 여겼던 그가, 남쪽 끝 유배지에서 악어에게 협박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모순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한유는 황제에게도 부처에게도 악어에게도 매번 같은 방식으로 맞섰다.
논리와 문장으로.
조주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그가 떠난 뒤, 강 이름을 '한강(韓江)'으로 바꾸어 불렀다.
상소문 하나로 황제에게 찍혀 쫓겨난 사람의 이름을 강에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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