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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자기를 증오하게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1841년 10월, 쇠렌 키르케고르는 약혼녀 레기네 올센에게 약혼반지를 우편으로 돌려보냈어요.
직접 만나지 않고, 편지에 봉투를 붙여서.
레기네는 당시 18세였어요.
키르케고르는 1840년 9월에 약혼했는데, 딱 1년 만에 파혼을 선언했어요.
그런데 파혼하는 방식이 이상했어요.
그는 레기네가 자기를 미워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바람둥이처럼 행동했어요.
"나를 미워해야 네가 덜 아플 거야"라는, 상대방이 납득하기 전까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예요.
이유가 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평생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할 사람임을 알았고, 그 짐을 그녀에게 지울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정작 그는 레기네를 죽는 날까지 사랑했어요.
유언장에는 전 재산을 레기네에게 남긴다고 적혀 있었어요.
사랑했기 때문에 버렸고, 버렸기 때문에 평생 괴로워한 사람.

세계 철학사에 남은 그 책은, 사실 한 여자에게 보내는 800페이지짜리 공개 변명이었어요.
파혼 직후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을 떠나 베를린으로 갔고, 거기서 광적으로 글을 썼어요.
1843년에 출간된 『이것이냐 저것이냐』(덴마크어 원제: Enten-Eller)는 두 권짜리 철학 대작이에요.
쉽게 말하면 "쾌락을 쫓는 삶과 윤리를 따르는 삶,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이 책 1부에는 '유혹자의 일기'라는 챕터가 있어요.
냉소적인 바람둥이가 한 여자를 의도적으로 유혹하고 버리는 이야기인데, 그 바람둥이의 실제 모델은 키르케고르 자신이었어요.
그리고 독자로 상정한 사람은 레기네였어요.
결국 그는 "나는 나쁜 놈이라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라는 말을 직접 못 하고, 800페이지짜리 책을 써서 우회적으로 전달한 거예요.
헤어진 연인에게 차마 직접 설명하지 못하고 SNS에 자기 험담을 올려 상대가 보기를 바라는, 그 현대인의 심정과 정확히 같아요.

그는 그녀를 버렸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다니는 길목에서 10년간 기다렸어요.
베를린에서 돌아온 키르케고르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경로로 코펜하겐 거리를 산책했어요.
전기 작가들은 그 경로가 레기네가 다니던 길과 겹치도록 계산된 것이었다고 기록해요.
1847년, 레기네는 프레데리크 슐레겔이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래도 키르케고르는 멈추지 않았어요.
그녀가 지나가는 창가를 지켰고, 거리에서 마주치면 모자를 들어 인사했어요.
파혼을 선언한 쪽은 그였지만, 평생 그녀 주변을 맴돈 것도 그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차단해놓고 새벽마다 그 사람 SNS를 훔쳐보는 것과 같아요.
"선택했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선택 앞에서 매일 무너지는 것.
키르케고르는 이 모순을 철학으로 풀어냈어요.
불안이란 자유로운 선택 앞에서 느끼는 감각이라고 했어요.
자유가 클수록 불안도 크고, 그 불안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철학은 한 여자를 버린 대가로 완성되어 있었어요.
1855년 10월, 키르케고르는 코펜하겐 거리에서 쓰러졌고, 병원에 실려간 뒤 한 달을 버티다 42세로 숨을 거뒀어요.
쓰러지기 직전 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마지막 유산을 은행에서 모두 인출한 직후였어요.
유언장에는 여전히 레기네의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그가 남긴 핵심 개념은 '단독자'예요.
군중 속이 아니라, 신 앞에 혼자 선 개인으로서의 나라는 뜻이에요.
이 개념은 한 세기 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들이 이어받아 실존주의의 뼈대가 됐어요.
실존주의는 한마디로 이것이에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본질을 가진 게 아니라, 내 선택으로 내가 된다."
키르케고르가 레기네와의 파혼을 통해 몸으로 겪은 바로 그 명제예요.
레기네를 잃지 않았다면 실존주의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결정이 결국 나를 만든 결정이었다는 역설.
당신이 지금 가장 아파하는 그 선택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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