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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칸트를 원어로 읽지 못하는 74세 중국 철학자가 3대 비판서를 전부 번역하겠다고 했을 때, 제자들조차 말렸어요.
모종삼은 독일어를 한 글자도 몰랐어요.
그런데 1982년, 74세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번역에 손을 댔어요.
영어 번역본과 일본어 번역본을 나란히 펼쳐놓고, 한 문단씩 대조하며 중국어로 옮겼어요.
오늘날로 치면, 번역기 없이 영어 자막만 보고 독일어 원서를 번역하겠다고 덤비는 은퇴한 할아버지 같은 상황이에요.
그것도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난해한 책으로요.
7년 뒤,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까지 3권이 모두 중국어로 나왔어요.
그때 그의 나이 81세였어요.
칸트 3대 비판서 완역은 서양 철학자들도 평생 한 번 해낼까 말까 한 프로젝트인데, 원서도 못 읽는 노인이 해냈어요.

중국 유학의 전통을 가장 치열하게 지킨 네 사람 중 누구도 그때 중국에 살고 있지 않았어요.
1949년, 공산당이 중국 본토를 장악하자 모종삼은 스승 웅십력을 두고 홍콩으로 건너갔어요.
웅십력은 신유학 1세대를 대표하는 거장이에요.
홍콩에서 그는 신아서원에 자리를 잡았어요.
신아서원은 전통 유학을 지키려는 망명 학자들이 직접 세운 작은 대학이에요.
중국 철학의 심장이 중국 바깥에서 뛰기 시작한 거예요.
1958년, 모종삼은 장군매·당군의·서복관과 함께 〈중국 문화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어요.
"중국 문화는 죽지 않았다"는 선포였어요.
자기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 집 밖에서 '진짜 우리 집은 이런 곳이야'를 지켜낸 상황, 딱 그거예요.

칸트가 철학사에서 가장 단호하게 닫아둔 문을, 모종삼은 맹자의 이름으로 다시 열었어요.
칸트는 인간이 지적 직관을 가질 수 없다고 단정했어요.
지적 직관이란 논리적 추론 없이 사물의 본질을 곧바로 꿰뚫어 보는 능력이에요.
"이건 신만 할 수 있는 일이야." 칸트가 그렇게 선을 그은 자리에서, 모종삼은 맹자의 본심과 왕양명의 양지를 꺼냈어요.
본심은 모든 인간 안에 이미 있는 도덕적 마음이고, 양지는 옳고 그름을 직관적으로 아는 능력이에요.
유가의 수양을 통해 누구나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선언이었어요.
세계 챔피언이 "인간은 못 오른다"고 한 산에, 시골 할아버지가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매일 오르던데"라고 맞받은 셈이에요.
이 주장의 전모가 1971년 출간된 《지적 직각과 중국 철학》에 담겼어요.

송명 유학의 정상에 700년간 앉아 있던 주자를 모종삼은 '곁가지'라고 불렀어요.
주자는 12세기 송나라 학자로, 성리학을 집대성해 조선·일본·중국 모두가 국가 정통으로 받든 인물이에요.
700년간 동아시아 철학의 공식 원조였어요.
모종삼은 1968~1969년, 총 1500쪽짜리 《심체와 성체》 3권을 내놓으며 이 질서를 뒤집었어요.
그는 주자를 '별자', 즉 본류에서 벗어난 곁가지로 규정하고, 육상산과 왕양명 계열을 유학의 진짜 주류로 세웠어요.
수백 년 된 정통을 뒤흔드는 데 무기라곤 문헌 재해석 하나뿐이었어요.
이 책은 지금도 동아시아 철학계에서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어요.
모종삼이 옳은가, 아닌가.
그 질문에 학자들은 아직도 답을 쓰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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