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난민이 된 대학 교수가 옥탑방 벽에 칠판을 걸고 학생을 모았어요.
1949년 가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수십만 명이 홍콩으로 밀려들어왔어요.
그 흐름 속에 40세의 철학자 탕쥔이(唐君毅)도 있었어요.
탕쥔이는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명문 대학의 교수였어요.
하지만 그 타이틀은 홍콩 구룡 반도 골목 안, 계림가(桂林街) 63-65번지 옥탑방 앞에선 아무 의미도 없었어요.
그는 중국사학의 대가 첸무(錢穆)와 경제학자 장피제(張丕介)와 함께 그 옥상 방에 칠판 하나를 가져다 놓고 학교를 열었어요.
학교 이름은 신아서원(新亞書院, New Asia College).
낮에는 교실, 밤에는 학생 숙소로 쓰는 방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월세 내는 원룸 하나가 캠퍼스 전부인 셈이에요.
세 사람 모두 대륙 최고 명문에서 강의하던 교수들이었어요.
그랬던 이들이 이제 월세가 밀릴까 걱정하며 다음 학기를 도모하고 있었어요.
낙차가 너무 커서 오히려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예요.
학생이 학비를 못 내자 교수가 월급을 반납했어요.
신아서원에 모인 학생 대부분은 대륙에서 쫓겨온 난민이었어요.
지갑이 비어있는 건 교수나 학생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세 창립자는 월급을 스스로 반납하거나 개인 저축을 학교 운영비로 털어넣었어요.
그중에서도 탕쥔이는 홍콩 신문에 철학 원고를 팔아 생활비와 교실 임대료를 충당했어요.
철학자가 원고료로 자기 학교 전기세를 낸 꼴이에요.
낮엔 강의, 밤엔 원고, 새벽엔 강의록 정리.
1년 내내 월급 없이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을 상상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죠.
그런데 그게 1년이 아니라 몇 년째 계속됐어요.
생활이 빠듯해도 탕쥔이는 강의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에게 가르치는 일은 먹고 사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였거든요.
어떤 의미에서 신아서원은 건물이 아니라 그 세 사람의 의지로 서 있었어요.
조국에서 쫓겨난 네 명이 조국의 문화를 세계 앞에 변호하는 4만 자 선언문을 발표했어요.
1958년 1월 1일, 탕쥔이는 철학자 머우쭝싼(牟宗三), 쉬푸관(徐復觀), 그리고 정치사상가 장쥔마이(張君勱)와 함께 긴 선언을 세상에 내놓았어요.
제목은 「중국 문화에 관해 세계 인사에 경고하는 선언(爲中國文化敬告世界人士宣言)」이었어요.
4만 자가 넘는 이 글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중국 전통 문화, 특히 유학(儒學)이 단순한 낡은 관습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보편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
유학이란 공자(孔子)에게서 시작된 도덕과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의 체계로, 2천 년 동안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가 된 사상이에요.
같은 시기 대륙에선 공산당이 전통 문화를 사구(四舊), 즉 '낡은 사상·낡은 문화·낡은 풍속·낡은 습관'으로 규정하며 파괴하고 있었어요.
조국에서 추방된 네 사람이, 조국이 없애려는 문화를 외국 독자들 앞에서 변호한 거예요.
이 선언이 훗날 신유가(新儒家) 운동의 사상적 출발점이 됐어요.
신유가란 20세기 들어 현대철학의 언어로 유학을 다시 읽으려 한 지식 운동이에요.
전통을 그대로 지키는 게 아니라, 서양 철학과 대화하며 유학을 새롭게 살려내려 한 시도였어요.
본국에서 자신의 종교가 금지된 망명자들이 오히려 해외에서 그 종교를 변호하는 책을 쓴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폐암 선고를 받은 해, 그는 책상 앞에 앉아 9개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1976년, 탕쥔이는 폐암 진단을 받았어요.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어요.
그 상태에서 그가 선택한 건 치료보다 글쓰기였어요.
그는 마지막 저작 「생명 존재와 심령 경계(生命存在與心靈境界)」를 완성했어요.
총 1,200쪽에 달하는, 그의 평생 철학이 집약된 책이에요.
이 책의 구조는 독특해요.
인간의 의식이 체험할 수 있는 9가지 경계(境界), 즉 '세계'를 단계적으로 그려냈어요.
물질과 감각의 세계에서 출발해, 도덕적 실재, 그리고 마침내 종교적 초월의 경지까지 올라가는 지도 같은 책이에요.
경계(境界)란 쉽게 말해 사람이 무언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의식의 결이에요.
같은 나무 한 그루도 식물학자가 보면 분류 대상이고, 화가가 보면 색채이고, 철학자가 보면 존재의 증거가 되는 것처럼요.
탕쥔이는 그 아홉 가지 방식을 하나씩, 하나씩 시력이 흐려지는 눈으로 써내려갔어요.
1977년 책이 출간됐고, 탕쥔이는 1978년 2월 세상을 떠났어요.
죽기 1년 전에 쓴 책이 평생의 철학을 모두 담은 체계가 됐어요.
어쩌면 탕쥔이에게 옥탑방도, 망명도, 폐암도, 전부 그 9개의 세계 어딘가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