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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슝스리(熊十力)가 철학을 시작한 건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였어요.
그 전까지 그는 총을 들고 있었거든요.
1885년 후베이성 황강에서 태어난 슝스리는 1911년 신해혁명 때 무창 봉기의 참모로 가담했어요.
신해혁명은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인데, 그 총성이 처음 울린 곳이 바로 무창이에요.
슝스리는 그 한복판에 있었어요.
그런데 혁명이 끝나고 나서 그가 느낀 건 해방감이 아니었어요.
정치에 대한 깊은 환멸이었죠.
1918년 무렵, 그는 군복을 벗고 홀연히 난징으로 향해요.
오우양징우(歐陽竟無)가 세운 난징내학원(南京內學院)에 들어간 거예요.
인도 불교의 유식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기관이었어요.
총을 들던 손이 경전을 펴기까지 딱 10년이 걸린 셈이에요.
스타트업으로 잘나가다 어느 날 회사를 접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전만 읽기 시작하는 사람, 주변에서 다들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 상황이 슝스리에게 실제로 벌어진 거예요.
1922년, 당대 신유학자 량수밍(梁漱溟)의 추천으로 슝스리는 베이징대 철학과 강사가 됐어요.
그때 그의 나이, 서른여덟이었어요.

슝스리는 자신에게 밥을 먹여준 학문을 공개적으로 부쉈어요.
난징내학원에서 슝스리가 배운 건 유식학(唯識學)이에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인도 불교 철학이에요.
"저 나무가 진짜 있는 게 아니라, 내 의식이 나무를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죠.
그런데 슝스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의문이 쌓였어요.
의식을 잘게 쪼개는 방식으로는 세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커진 거예요.
결국 1932년, 그는 자신의 대표작 '신유식론(新唯識論)'을 펴냈어요.
제목부터 선전포고예요.
스승 오우양징우의 체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거든요.
내학원의 동문 류딩취안(劉定權)은 즉각 '파신유식론(破新唯識論)'을 써서 반박했어요.
"당신 이론을 박살내겠다"는 책 제목이에요.
그러자 슝스리는 또 '파파신유식론'으로 응수했죠.
박사 지도교수의 이론을 논문으로 박살 낸 뒤에도 같은 학계에서 밥 먹어야 하는 상황, 슝스리는 그걸 실제로 했어요.
그리고 버텼어요.

슝스리의 세계에는 '뒤에 숨은 진짜'가 없어요.
지금 눈앞에서 출렁이는 이것이 전부예요.
그의 철학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체용불이(體用不二)'예요.
본체(體, 만물의 근원)와 작용(用, 그 근원이 현실로 펼쳐지는 모습)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에요.
바닷물과 파도로 생각하면 돼요.
파도를 떠나 바다가 따로 있지 않고, 바다를 떠나 파도가 따로 있지 않아요.
파도가 곧 바다고, 바다가 곧 파도예요.
유식학은 의식의 층위를 잘게 쪼개고 분석하는 방식이에요.
슝스리는 "그렇게 쪼개면 진짜를 놓친다"고 본 거예요.
유튜브 영상과 그걸 만든 알고리즘은 분리할 수 없잖아요.
보이는 것(영상)과 움직이는 원리(알고리즘)가 한 몸인 것처럼, 본체와 작용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데 반전이 하나 있어요.
슝스리는 불교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공자와 주역(周易)으로 돌아가요.
주역은 고대 중국에서 세상의 변화 원리를 담은 책이에요.
거기에 나오는 '생생불식(生生不息)', 그러니까 "끊임없이 생성한다"는 개념을 끌어와 우주를 설명해요.
세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솟구치고 흘러가는 운동 그 자체라는 거죠.
불교로 시작해서 유학으로 끝났다는 것, 이 점이 슝스리를 단순히 분류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예요.

세상이 공자를 부수던 날, 슝스리는 거리에서 공자의 이름을 불렀어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많은 지식인들이 대만이나 해외로 떠났어요.
슝스리는 남았어요.
신해혁명 동지이자 공산당 원로였던 둥비우(董必武)의 배려 덕분에, 상하이에서 한동안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이 터졌어요.
마오쩌둥이 일으킨 대규모 사상 정화 운동이에요.
공자는 봉건 사상의 상징으로 낙인찍혔고, 유학 서적은 불태워졌어요.
홍위병이라 불리는 젊은 열혈 혁명가들이 슝스리의 집을 뒤지고 원고를 불태웠어요.
그때 슝스리가 거리로 뛰쳐나가 외쳤다고 전해져요.
"공자가 나를 구한다, 맹자가 나를 구한다!"
흐느끼면서요.
83년 인생을 총과 경전과 논쟁으로 채운 노인이, 불타는 원고 앞에서 그 이름들을 불렀어요.
그래도 멈추지 않았어요.
말년 저작 '건곤연(乾坤衍)'은 바로 이 시기, 가장 혹독한 환경 속에서 쓰였어요.
1968년, 슝스리는 상하이에서 폐렴으로 눈을 감았어요.
모두가 유학을 부정하던 시대에 홀로 유학을 붙들고 죽은 사람이에요.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그 질문은 지금도 꺼지지 않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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