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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브루노의 이단 심사는 그의 책이 아니라, 그의 방 벽에서 시작됐어요.
1576년, 나폴리 산도메니코 수도원의 28살 도미니크 수사 조르다노 브루노는 방 벽에 걸려 있던 성모상과 성인 상들을 하나씩 내렸어요.
남긴 건 예수 십자가 하나뿐이었죠.
오늘날로 치면 회사 책상에서 사내 규정에 어긋나는 물건 몇 개를 치웠을 뿐인데, 감사팀이 바로 호출 통보를 보낸 격이에요.
수도원은 즉각 움직였고, 브루노는 이단 혐의로 로마 소환 명령을 받았어요.
그는 소환에 응하는 대신 수도복을 벗고 도망쳤어요.
11년 동안 가톨릭 수사로 살아온 그의 첫 번째 이단 행위가 '방 정리'였다는 사실이 묘해요.
그는 도망치면서도 신앙을 버린 게 아니었어요.
그저 자기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솔직하게 치웠을 뿐이었죠.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기 25년 전, 브루노는 맨눈과 논리만으로 태양계 바깥을 상상했어요.
도망자 신세로 파리를 거쳐 런던에 정착한 그는 1584년 『무한한 우주와 세계들에 관하여』를 출간해요.
이 책에서 그는 태양이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 중 하나일 뿐이며, 우주에는 중심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했어요.
각각의 별은 자체 행성계를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그 행성들에는 생명이 살고 있을 수 있다는 거였죠.
망원경이 발명된 건 1609년이고, 인류가 태양계 밖 행성을 처음 관측으로 확인한 건 1995년이에요.
비행기도 없던 시대에 누가 '언젠가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이 지구 반대편까지 사람을 실어 나를 것이다'라고 책에 적은 격이에요.
당시 유럽의 공식 세계관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이었어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별들은 하늘 천장에 박힌 장식품이었죠.
이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건, 당시로선 교회와 국가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일이었어요.
이 황당해 보이는 직관은 순전히 철학적 추론에서 나왔어요.
증거는 없었어요.
그런데 400년 뒤 천문학은 그 대부분이 옳았다고 확인해줬어요.

브루노를 이단자로 만든 건 교황이 아니라, 환불받고 싶어 한 베네치아 귀족 한 명이었어요.
1591년, 조반니 모체니고라는 베네치아 귀족이 브루노에게 접근했어요.
그가 원한 건 브루노가 개발한 기억술이었죠.
기억술은 고대 로마의 '기억 궁전' 기법을 발전시킨 암기·연상 체계예요.
머릿속에 가상의 공간을 짓고 그 방 곳곳에 기억할 내용을 배치해두는 방식이에요.
당시 이 기술은 오늘날의 프리미엄 강의보다 훨씬 비싼 값어치가 있었어요.
모체니고는 브루노를 자기 저택으로 초청해 가르침을 받았어요.
그런데 기대만큼 배우지 못했다고 판단한 그는 1592년 5월 23일 브루노를 집 다락방에 가둬버린 뒤, 베네치아 종교재판소에 밀고장을 제출해요.
비싼 돈 주고 전문가를 과외 선생으로 불렀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고 경찰에 신고한 셈이었죠.

그들이 두려워한 건 브루노의 책이 아니라, 불 속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을 단 한 문장이었어요.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이송된 브루노는 8년 동안 감옥에 갇혀 심문을 받았어요.
로마 종교재판소는 이단 견해를 철회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브루노는 끝내 거부했죠.
1600년 2월 8일, 마침내 이단 판결이 내려졌어요.
판결이 선고되는 순간 브루노가 남긴 말이 전해져요.
"당신들이 나보다 더 떨고 있다."
두려움에 굳어버린 법정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판사들을 향해 한 말이었어요.
2월 17일 새벽,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이 집행됐어요.
집행 직전 담당자들은 브루노의 입에 쇠못을 박아 혀를 꿰뚫었어요.
군중 앞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외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처형 직전에 소셜미디어 계정을 강제로 삭제하는 것과 같은 목적이에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쇠못 하나가 브루노의 마지막 장면을 400년 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게 만들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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