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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40년, 그가 포로로 끌려가며 가방에 챙긴 책 한 권이 그의 인생 전체를 바꿔요.
폴 리쾨르는 프랑스 병사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에 붙잡혀 폴란드 쪽의 장교 포로수용소 오플라그 II-D에 수감돼요.
그리고 그곳에서 5년을 보내요.
가방 속에 있던 건 에드문트 후설의 두꺼운 독일어 철학책 한 권이었어요.
후설은 독일 현상학의 창시자예요.
현상학, 어렵게 들리지만 쉽게 말하면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처음 보는 사람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철학"이에요.
리쾨르는 사전도 없이, 5년 내내 그 책 여백에 연필로 프랑스어 번역을 써넣어요.
오늘날로 치면 일본어 전공서적을 사전 한 번 찾지 못하고 책 가장자리에만 빼곡히 번역해나가는 거예요.
그것도 5년 동안.
독일군에 붙잡힌 프랑스 포로가 5년간 한 일이 독일 철학의 프랑스어 번역이었어요.
이 필사본은 1950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그대로 출간돼요.
철창 안에서 시작된 집착이 그의 학자 인생 전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학생을 지지했던 철학자가 받은 대가는 학생 손에 들린 쓰레기통이었어요.
1969년, 리쾨르는 파리 낭테르 대학교 학장이 돼요.
낭테르는 바로 1년 전인 1968년 5월, 학생운동이 폭발한 진원지였어요.
1968년 5월 혁명을 한 줄로 설명하면 이래요.
프랑스 대학생들이 "낡은 권위와 제도를 바꿔라"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건이에요.
리쾨르는 그때 학생들 편에 서서 운동을 공개 지지했어요.
그런데 1970년 1월, 시위 현장에서 한 학생이 리쾨르의 머리 위에 쓰레기통을 뒤집어 씌워요.
사원 편에 서서 경영진과 싸웠던 팀장이, 정작 그 사원들에게 "당신도 결국 기득권이잖아요"라는 말을 들으며 쫓겨나는 상황이에요.
'대화와 이해의 철학'을 만든 사람이 자기 학생들과의 대화에 실패해 조용히 프랑스를 떠났어요.
리쾨르는 학장직을 사임하고 벨기에 루뱅 대학교로, 이어 미국 시카고 대학교로 교편을 옮겨요.

리쾨르가 세상을 뜨고 12년이 지난 2017년, 그의 책상을 정리하던 청년이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어 있었어요.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 관저예요.
그 청년이 바로 에마뉘엘 마크롱이에요.
1990년대 후반, 20대 초반의 철학과 학생 마크롱은 80대의 리쾨르 연구실을 드나들었어요.
원고 정리, 자료 조사, 주석 검토까지, 리쾨르의 마지막 대작 완성을 위한 잡일들을 맡았어요.
그 대작이 바로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잊는가"를 탐구한 『기억, 역사, 망각』이에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마크롱은 공식 인터뷰에서 리쾨르를 자기 사상의 '아버지'로 지목해왔어요.
"인간은 자기 인생을 이야기로 엮는 존재"라고 쓴 철학자 옆에, 훗날 프랑스의 새 이야기를 쓰게 될 청년이 먼저 와 있었던 거예요.
이건 소설이 아니에요.

리쾨르에 따르면 당신이 누구인지는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가 결정해요.
1990년, 그는 『타자로서 자기 자신』이라는 책에서 '서사적 정체성' 개념을 내놓아요.
서사적 정체성이란, 내 자아는 유전자나 사회적 역할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같은 실패를 "나는 망했어"라고 말하면 비극이 되고, "그때 나는 배웠어"라고 말하면 성장담이 돼요.
사건은 똑같은데 인생이 달라지는 거예요.
이 책이 나올 때 리쾨르는 70대였어요.
포로로 5년을 잃고, 학생들에게 공개 모욕을 당하고, 1986년에는 아들 올리비에를 먼저 떠나보낸 뒤였어요.
무너진 인생을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이론이었어요.
이론이 먼저가 아니라 그의 삶이 먼저였어요.
포로수용소 여백의 글자들, 머리 위에 씌워진 쓰레기통, 아들을 먼저 보낸 슬픔, 그 모든 것들이 이 한 개념 안에 담겨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는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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