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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가 살아남은 이유와 그의 가족이 죽은 이유는 똑같았어요.
유대인이라는 것.
단지 그는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었을 뿐이에요.
1940년,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프랑스군 통역 장교로 복무하다 독일군 포로가 됐어요.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인으로,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모두 구사했기에 군에서 통역병으로 발탁됐죠.
그는 팔라우 근처 포로수용소에서 1945년까지 5년간 강제노역을 했어요.
처형은 면했어요.
제네바 협약 덕분이에요. 제네바 협약은 전쟁 포로를 죽이지 말라는 국제 약속으로, 프랑스군 장교라는 신분이 그를 보호해줬죠.
프랑스 군복 한 벌이 그의 목숨을 지킨 거예요.
그런데 같은 시간, 고향 리투아니아에서는 그의 부모님과 형제, 친척 전원이 나치에게 학살됐어요.
그들도 유대인이었지만, 군복이 없었어요.
오늘로 치면 해외 출장 중에 고국에서 재난 뉴스가 터졌는데 자신만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이에요.

수용소 5년 동안 그를 사람으로 대해준 존재는 단 하나, 떠돌이 개 한 마리였어요.
마을 사람들도 아니고, 동료 포로도 아니에요.
이름도 모르는 개가요.
레비나스는 훗날 에세이 '개의 이름'에서 이 일화를 기록했어요.
매일 노역을 나가면 마을 사람들은 유대인 포로들을 '유인원(sous-homme)', 즉 인간 이하의 존재처럼 취급하며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용소 근처에 나타난 떠돌이 개 '보비(Bobby)'만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반겨줬어요.
모두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방에서 강아지 한 마리만 달려와 인사해주는 장면, 상상이 가시나요?
그게 레비나스에게 매일 펼쳐진 현실이었어요.
그는 보비에 대해 이렇게 썼어요. "보비는 나치 독일의 마지막 칸트주의자였다."
칸트주의자란 '모든 이성적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하라'는 철학자 칸트의 윤리 원칙을 따르는 사람이에요.
인간들이 유대인을 인간으로 보기를 멈춘 그곳에서, 그 원칙을 끝까지 지킨 건 개였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이 아이러니가 레비나스 철학의 씨앗이 됐어요.

레비나스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네가 누군가의 얼굴을 본 순간, 너는 이미 책임을 진 거예요.
그런데 이게 왜 혁명적이냐면, 서양철학 2000년이 한 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1961년, 레비나스는 주저인 '전체성과 무한(Totalité et Infini)'을 출간했어요.
700페이지짜리 이 철학서는 '타인은 내가 이해하고 분석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고 선언해요.
데카르트 이후 서양철학이 '나(자아)'를 출발점으로 삼아왔다면, 레비나스는 진짜 출발점은 '내 앞에 서 있는 타인의 얼굴'이어야 한다고 못 박은 거예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 얼굴은 소리 없이 말한다고 해요.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이게 규칙이나 법보다 먼저 발생하는 윤리의 출발점이라는 거예요.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불편해지는 그 찰나, 기억하시나요?
레비나스는 그 찰나가 바로 '윤리의 시작'이라고 했어요.
외면하고 싶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책임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레비나스는 자신의 철학적 스승이 가족을 죽인 이념의 편에 섰다는 사실을 평생 잊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그의 책은 평생 읽었어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했던 사람이에요.
1928년, 레비나스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유학을 갔어요.
당대 최고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직접 배우기 위해서였죠.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을 프랑스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데 1933년, 하이데거가 나치당에 입당했어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 자리에 오른 뒤 유대인 교수들을 쫓아내는 연설까지 직접 했어요.
존경하던 스승이 알고 보니 자기 가족을 죽인 이념과 한편이었던 거예요.
레비나스는 이렇게 선언했어요.
"하이데거의 철학은 용서할 수 있지만, 그의 1933년은 용서할 수 없다."
그 뒤 평생 하이데거의 책은 계속 읽고 인용했지만,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않았어요.
책은 받아들이고, 사람은 거절하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그가 평생 가르친 철학이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라"였잖아요.
그 모순 속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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