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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황진이는 당대 고승 지족선사의 10년 수행을 하룻밤 만에 무너뜨린 뒤, 송도의 한 초가집을 찾아갔어요.
그녀가 시험할 마지막 상대가 서경덕이었거든요.
비가 퍼붓는 밤이었어요.
황진이는 흠뻑 젖은 채 문을 두드렸고, 옷을 말리겠다며 방 안으로 들어왔어요.
지족선사를 쓰러뜨린 바로 그 수법이었어요.
서경덕은 그냥 잠들었어요.
야담집 『어우야담』에 전하는 이야기예요.
황진이가 가까이 다가와도 그는 태연히 자기 자리에서 눈을 감았고, 황진이는 결국 손을 거뒀어요.
회식 자리에서 다들 흐트러지는데 혼자만 담담한 사람 있잖아요.
그 앞에선 오히려 장난치는 쪽이 민망해지는 분위기가 되죠.
당대 최고의 유혹이 유일하게 실패한 상대가, 벼슬도 재산도 없는 초가집 선비였다는 것. 그게 이 이야기가 수백 년째 전해지는 이유예요.

그의 서재에는 스승이 없었어요.
있는 거라고는 벽에 붙인 종이 한 장, 그 위의 글자 하나뿐이었어요.
서경덕이 18세에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구절에서 막혔어요.
격물치지란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른다"는 뜻으로, 성리학의 핵심 공부법이에요.
그는 이걸 스승에게 묻는 대신, 알고 싶은 개념을 종이에 써서 벽에 붙였어요.
하늘을 알고 싶으면 '天'을, 귀신을 이해하고 싶으면 '鬼神'을 붙였어요.
그리고 몇 날 며칠, 어떤 때는 몇 해씩 그것만 응시했어요.
유튜브 강의도, 과외도, 문파의 스승도 없이.
당시 조선 학계는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계보가 거의 절대적이었어요.
이황과 이이처럼, 누구의 문하인지가 그 사람의 학문을 규정했거든요.
그런데 서경덕은 어느 계보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벽 앞에서 기일원론이라는 자기만의 철학 체계를 세웠어요.
기일원론은 "우주 만물은 기(氣) 하나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물리학자가 모든 현상을 에너지 하나로 설명하려는 발상과 비슷해요.
스승 없이 이 결론에 혼자 도달했다는 게, 당시 사람들이 그를 특별하게 본 이유 중 하나예요.

왕이 내린 관직을 거절한 선비의 집에, 정작 조정에서 찾을 수 없던 인재들이 모여들었어요.
조선은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는 게 선비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던 나라예요.
그런데 서경덕은 조광조·김안국 같은 당대 조정 실세들의 천거를 모두 물리쳤어요.
1544년 중종이 직접 후릉참봉 자리를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후릉참봉은 왕릉을 관리하는 낮은 관직이에요.
하지만 임금이 사대부에게 직접 내리는 공식 임명인 만큼, 거절하는 건 무례에 가까운 행동이었어요.
그는 그 자리도 사양하고 개성의 화담으로 돌아갔어요.
화담은 개성 근처의 지명으로, 서경덕이 초가집을 짓고 살던 곳이에요.
훗날 사람들은 그를 '화담 선생'이라고도 불렀어요.
양식이 떨어져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았고, 제자들이 쌀을 져 날라야 했어요.
그럼에도 허엽, 박순, 이지함 같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제 발로 그 초가집을 찾아왔어요.
이지함은 훗날 『토정비결』을 지은 학자로, 지금도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이에요.
대기업 스카우트 제안을 네 번 거절하고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데, 후배들이 오히려 그 작업실로 줄 서서 찾아오는 풍경이에요.
벼슬 없는 초가집이 한 시대의 학당이 됐어요.

송도에서 가장 빼어난 셋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지금도 폭포, 기생, 그리고 한 선비를 말해요.
그 셋을 처음 묶은 사람이 바로 그 선비 본인이었거든요.
송도삼절(松都三絶)은 개성에서 가장 빼어난 세 가지를 가리키는 말로, 박연폭포, 황진이, 그리고 서경덕을 말해요.
이 셋을 처음 나란히 명명한 게 서경덕 본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겸양이 미덕이던 조선 선비 사회에서, 폭포와 기생 옆에 자기 이름을 당당히 붙인 셈이에요.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게 뭐야?"라는 질문에 맛집, 공원, 그리고 "나"라고 답하는 것과 같아요.
농담 같지만, 그는 진심이었고, 후대도 그를 그 자리에서 지우지 않았어요.
죽기 직전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죽은 뒤 학문을 하고자 하는 이는 기(氣)에서 출발하라."
벽에 글자 하나 붙여놓고 몇 해씩 응시하던 그 방식을, 그는 마지막까지 넘겨줬어요.
「원이기」, 「태허설」, 「귀신사생론」을 남기고 떠났어요.
황진이의 유혹도, 왕의 관직도, 그를 흔들지 못했어요.
그를 기억하게 만든 건 결국 그가 거절한 것들이 아니라, 벽 앞에서 혼자 응시하던 글자 한 자였던 거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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