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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가 숨진 책상 위에는, 그가 반박하려던 바로 그 책이 펼쳐져 있었어요.
1961년 5월 4일 저녁,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자택 서재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되었어요.
책상 위의 책은 데카르트의 『광학(Dioptrique)』이었어요.
눈과 시각을 마치 정밀한 기계처럼 설명한, 1637년에 쓰인 책이에요.
메를로퐁티는 그 책에 반박하는 원고를 쓰던 중이었어요.
그는 평생 "우리는 몸으로 세계를 이해한다"고 주장한 철학자였어요.
그런데 정작 자기 몸이 보낸 경고 신호를 놓친 채, '시각이란 무엇인가'를 쓰다 숨졌어요.
마치 밤새 운동 영상을 만들다 정작 자기가 쓰러지는 유튜버 같은 아이러니예요.
그는 당시 53세, 콜레주 드 프랑스의 최연소 철학 교수였어요.
콜레주 드 프랑스는 파리에 있는 최고 권위의 연구 기관인데, 그 자리는 그가 직접 쟁취해낸 거예요.

팔이 없는 환자가 문 손잡이를 잡으려 손을 뻗었어요.
메를로퐁티는 거기서 철학의 새 출발점을 봤어요.
1945년 그는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책을 냈어요.
그 책의 핵심 증거가 바로 환상지(phantom limb) 현상이에요.
팔다리를 절단한 환자가 사라진 팔다리를 여전히 느끼는 것, 없는 손으로 물건을 잡으려 하는 것이에요.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내 몸이 없다고도 상상할 수 있다."
마음과 몸은 완전히 별개라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반문했어요. "그렇다면 왜 팔이 없어진 뒤에도, 환자의 몸은 팔이 있다고 고집하는 거야?"
그는 이것을 몸틀(schéma corporel)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어요.
우리 몸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의식보다 먼저 작동한다는 뜻이에요.
계단을 내려가다 한 칸이 더 있는 줄 알고 발을 헛디뎌 본 경험, 다들 있잖아요.
그 순간 '아, 계단이 한 칸 더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니에요.
몸이 먼저 그 계단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예상이 틀렸을 때 발이 허공을 밟는 거예요.
의식이 아니라 몸 자체가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파리의 가장 유명한 두 철학자의 우정을 끝낸 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전쟁이었어요.
메를로퐁티와 장폴 사르트르는 프랑스 실존주의의 두 얼굴로 불리던 사이였어요.
실존주의는 "인간은 태어날 때 정해진 본질이 없고,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만들어간다"는 철학이에요.
두 사람은 1945년 좌파 지식인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함께 창간하며 편집 동지가 되었어요.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어요.
소련이 북한을 지원하는 방식과, 스탈린의 강제 수용소 폭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놓고 두 사람 사이가 갈렸어요.
메를로퐁티는 "이건 아니다"라며 1953년 편집위원직을 사임했어요.
그리고 1955년, 그는 『변증법의 모험』이라는 책에서 사르트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어요.
'울트라-볼셰비키', 즉 극단적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을 직접 썼어요.
함께 잡지를 만들던 친구에게 그런 딱지를 붙인 거예요.
사르트르는 그 뒤로도 '친공산주의자' 입장을 굽히지 않았어요.
결국 두 사람은 다시 화해하지 못했어요.
파리 카페에서 함께 시작한 우정이 한반도의 전쟁 하나 앞에서 갈라진 거예요.

메를로퐁티에게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칸트가 아니라, 사과 하나를 100번 그린 세잔이었어요.
폴 세잔은 19세기 후기인상파 화가로, 사과 정물화로 특히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는 사과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델에게 100번 넘게 포즈를 다시 잡게 하는, 거의 광적인 관찰자였어요.
메를로퐁티는 1945년 에세이 『세잔의 의심』에서 그 세잔을 철학의 사례로 분석했어요.
세잔은 사과를 머릿속 개념으로 그리지 않았어요.
빛이 달라지면 색이 달라지는 순간, 눈과 손이 사과에 닿는 감각, 그 모든 것을 몸으로 흡수하며 그렸어요.
메를로퐁티는 그걸 보며 생각했어요. "보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잖아."
화가는 개념을 손으로 베껴 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몸으로 세계를 접촉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사람이에요.
이 통찰은 그가 숨진 후 출간된 유고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964년)에서 '살(chair)' 개념으로 이어졌어요.
'살'은 피부가 아니에요.
내가 세계를 만지면서 동시에 세계에게 만져지는 그 접촉면, 주체와 세계가 서로 얽혀 감각을 공유하는 바탕이에요.
똑같은 풍경인데 사진으로 찍으면 밋밋하고 직접 보면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하는 개념이에요.
메를로퐁티가 데카르트의 책을 펼쳐놓고 숨진 그날 밤, 그는 아마 이 마지막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을 거예요.
"보는 것은 과연 눈에서만 일어나는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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