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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합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답안지에 그림을 그렸어요.
조선시대 과거시험, 오늘날로 치면 국가고시 최종 면접 직전에 "당신 합격권이에요"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백지를 낸 셈이에요.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1차 시험을 통과한 뒤 2차 시험 응시 자체를 영영 포기했어요.
그런데 정작 이 시기에 쓴 글들이 더 흥미롭습니다.
'양반전'은 가난한 양반이 자신의 신분을 돈 주고 사려는 부자 상인에게 팔아버리는 이야기예요.
조선에서 양반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신분이었는데, 그걸 상품처럼 거래하는 장면을 버젓이 써놓은 거예요.
'호질'은 범이 선비를 꾸짖는 소설이에요.
짐승이 사람에게 "당신들 말이 행동과 왜 이렇게 다르냐"고 묻는 이야기죠.
합격이 보이는 시험장을 등진 사람이,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이 읽힌 양반 비판 문학을 남겼어요.

조선에서 온 공식 사신은 세 명이었지만, 역사에 남은 건 수행원으로 묻어간 그의 일기였어요.
1780년, 박지원의 삼종형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사절단 대표로 뽑혔어요.
박지원은 별다른 공식 직함도, 임무도 없이 그냥 따라갔어요.
그 결과물이 '열하일기' 26권이에요.
열하는 청나라 황제가 여름에 머물던 별궁이 있는 도시로, 오늘날 중국 허베이성에 해당해요.
북경을 지나 그 열하까지, 5개월 여정을 낱낱이 기록했어요.
정식 보고서를 쓴 사신들의 문서는 지금 도서관 어딘가에 잠들어 있어요.
하지만 "출장에 친척 찬스로 따라간 사람의 블로그"는 수백 년째 읽혀요.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 열하일기는 베껴 쓰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데, 청나라의 기술과 도시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생했거든요.

왕이 한 작가의 문장을 읽고 직접 분노한 나라가 조선이었어요.
1792년, 정조는 문체반정을 선언했어요.
"요즘 문인들이 소설투에 청나라 말투를 섞어 쓰는 건 나라의 기강을 망치는 짓"이라며, 왕이 직접 글쓰기 스타일을 단속하겠다고 나선 사건이에요.
정조가 원흉으로 지목한 게 바로 열하일기였어요.
그리고 박지원에게 직접 명령했어요. "순정한 문체로 반성 글을 지어 바치라."
오늘날로 치면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대통령이 직접 사과문을 요구하는 장면이에요.
결과는? 박지원은 끝내 제대로 된 반성문을 내지 않았어요.
형식적으로 몇 마디 올렸지만, 문체를 바꾸거나 열하일기를 부끄러워한 흔적은 없어요.
왕의 명령에 버텼고, 왕도 결국 그를 크게 처벌하지 않았어요.

그는 양반을 비웃는 글을 쓰면서, 쉰이 넘어 스스로 양반 관료가 되어 수차를 돌렸어요.
1786년, 50세의 박지원은 음서로 첫 관직을 받았어요.
음서는 조상의 공으로 과거 없이 관직을 얻는 제도, 쉽게 말해 조상 덕에 자리를 얻은 거예요.
그런데 이 늦깎이 관료가 현장에서 한 일들이 놀라워요.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자마자 청나라에서 직접 눈으로 본 수차와 벽돌 굽는 가마를 고을에 도입했어요.
글로만 "청나라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외친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 돌렸어요.
그가 쓴 '허생전'에는 이런 장면이 나와요.
가난한 선비 허생이 큰돈을 빌려 조선 전체의 과일과 말총을 싹쓸이 매점해버려요.
그러자 가격이 폭등하고 양반들은 속수무책이 되는데, 양반의 경제적 무능을 정면으로 찌르는 이야기예요.
그는 또 백탑파의 좌장이었어요.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처럼 서얼 출신, 즉 신분 제도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기 어려운 학자들과 함께 청나라 기술과 제도를 배우자는 북학론을 이끌었어요.
양반을 조롱한 양반이, 신분의 피해자들과 함께 조선을 바꾸려 했다는 거예요.
양반을 조롱하고, 왕의 명령에 버티고, 쉰에 관직을 받아 수차를 놓고, 서얼 친구들과 조선의 미래를 논한 사람.
그가 일흔에 붓을 놓을 때, 조선은 그가 비웃던 모습 그대로였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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