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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 393자를 쓴 사람은 정치인도 관료도 아니었어요.
하이데거로 강의록을 채우던 서울대 철학 교수였습니다.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정부가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했어요.
국민교육헌장이란 학생과 공무원 전원이 암송해야 했던 교육 이념 선언문으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총 393자짜리 문서입니다.
1994년 폐지될 때까지 모든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실렸어요.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전교생이 일어서서 이 문장들을 함께 소리 내어 읽어야 했습니다.
못 외우면 집에 못 가는 학생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문장들의 초안을 잡은 사람이, 당시 독일 실존주의 철학을 연구하던 대학 교수였다는 사실이 반전입니다.

조선 청년이 서양철학을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길은 사실상 하나뿐이었어요.
일본인 교수에게 독일어로 헤겔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박종홍은 1903년 평양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을 때 선택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경성제국대학, 즉 일제가 경성(지금의 서울)에 세운 유일한 제국대학의 철학과에 진학하는 것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외국 점령군이 세운 대학에서 그 나라의 언어로 유럽 철학을 배우는 셈입니다.
1932년 졸업한 박종홍은 서양철학을 정식으로 이수한 조선인 1세대가 됐어요.
이화여전, 연희전문 등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의 안에는 기묘한 질문이 생겨납니다.
"나는 서양 철학을 배웠다. 그런데 나는 누구지?"
이 질문은 유학을 다녀온 많은 이들이 겪는 것과 닮아 있어요.
외국 문화를 깊이 파고들수록 오히려 자신의 뿌리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경험 말입니다.
하지만 박종홍의 경우, 그 질문은 단순한 정체성 고민이 아니라 평생의 학문적 방향이 됩니다.

그가 하이데거를 강의하면 할수록, 학생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한국 쪽으로 돌아섰어요.
해방 이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자리를 잡은 박종홍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와 헤겔의 변증법을 주로 가르쳤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란 무엇인가"를 물은 20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은 역사가 모순을 극복하며 발전한다고 본 사상가예요.
박종홍은 이 서양의 철학적 도구들을 손에 쥔 채,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서양 철학으로 무장한 한국 철학을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물이 『한국사상사』와 『창조의 논리』였어요.
낯선 것을 가장 깊이 배웠더니, 역으로 내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역설입니다.
그는 서양 철학의 언어로 한국인의 사유 방식을 설명하려 했어요.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긴장이 시작됩니다.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던 학자가, 동시에 국가 권력이 원하는 "민족 이념"의 설계자로 불려가게 되거든요.

그는 100편이 넘는 철학 논문을 썼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기억하는 그의 문장은 딱 393자예요.
1970년, 박종홍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됩니다.
이미 1968년에 국민교육헌장 초안을 작성한 그가, 이제는 공식적으로 정부 교육 이념 설계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정부와 학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부터 1994년 폐지까지 26년 동안 매일 낭독되었어요.
그 26년 사이 약 1,50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 393자를 외웠습니다.
평생 "창조적 사유"를 가르치던 철학자가, 결과적으로는 전 국민이 똑같이 암송하는 문장으로 가장 많이 기억되게 됐어요.
이게 바로 박종홍을 둘러싼 역설입니다.
그는 "왜 사는가"를 묻는 철학을 가르쳤지만, 가장 많이 퍼진 그의 글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문장이었어요.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드는 그 불편함, 박종홍 자신은 과연 느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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