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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석탄이 세계를 움직이던 1912년, 한 이탈리아 화학자가 뉴욕 강연장에서 "이 검은 연료의 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해는 타이타닉이 침몰한 해이고, 석탄 생산량이 정점을 향해 치솟던 해였다.
연기 뿜는 굴뚝이 번영의 상징이던 시절에, 자코모 치아미치안은 뉴욕에서 열린 세계 최대 화학 학회 무대에 올랐다.
그가 발표한 논문 제목은 "미래의 광화학(The Photochemistry of the Future)".
핵심은 단 하나였다. 인류는 결국 땅속 화석연료 대신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태양 에너지를 직접 써야 한다는 것.
1990년에 누군가 "곧 모든 사람이 주머니 속에 컴퓨터와 지갑과 카메라를 넣고 다닐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당시엔 허황됐지만, 돌아보면 정확했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치아미치안에게는 수년간의 실험이 뒤에 있었다.

볼로냐 화학과 건물 옥상에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통로만 남긴 채, 햇빛을 받는 유리병 수백 개가 몇 년째 늘어서 있었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그 유서 깊은 건물 꼭대기에서, 치아미치안은 투명 유리 플라스크에 서로 다른 화학 물질을 넣고 오직 햇빛 하나만으로 반응을 일으키는 실험을 이어갔다.
주변 과학자들 눈에 그는 "햇빛으로 화학을 하는 별난 늙은이"였다.
하지만 그 옥상 실험대에서 그는 세계 최초로 다양한 유기화합물의 광반응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니트로벤젠, 케톤 같은 물질들이 빛을 받으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낸 이 연구가, 오늘날 태양전지와 인공광합성 연구의 출발점이 됐다.
지금 우리 창가에 놓인 태양광 충전기의 100년 전 원형이 그 유리병들이라고 보면 된다.
치아미치안은 이 실험들을 바탕으로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1912년 강연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연기 없는 공장, 굴뚝 없는 도시가 올 것이다."

그의 이름은 노벨상 후보 명단에 아홉 번 올랐고, 아홉 번 모두 다른 사람이 받아 갔다.
1905년부터 1922년 사망 직전까지, 그는 거의 해마다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같은 시기 수상자들은 지금 교과서 각주에서도 찾기 어려운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매번 비슷했다. "흥미로운 자연현상일 뿐 산업적 가치가 없다."
광화학이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돈이 된다는 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100년 뒤, 태양광 산업의 연간 규모는 수천억 달러가 됐다.
동료가 "이거 언젠가 대박 난다"며 10년간 매달리는데 아무도 진지하게 보지 않는 상황,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 그 분야가 세계 표준이 되는 일과 정확히 같다.
치아미치안은 틀리지 않았다. 그저 100년쯤 일찍 태어났을 뿐이다.

치아미치안이 1912년 뉴욕에서 한 예언은 정확히 110년 뒤에 수치로 증명됐다.
다만 그가 그린 풍경 속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2022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이 역사상 가장 저렴한 형태의 전기가 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IEA는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책을 조율하는 기구다. 그 기구가 사실상 "태양이 이겼다"고 선언한 것이다.
1912년 강연에서 그가 그렸던 "연기 없는 공장, 굴뚝 없는 도시"가 현실이 됐다.
그런데 한 가지가 어긋났다. 치아미치안은 이탈리아가 "풍부한 태양 덕분에 에너지 독립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100년 뒤 유럽에서 태양광을 가장 많이 깐 나라는 독일과 스페인이었고, 정작 이탈리아는 뒤처졌다.
예언의 방향은 정확했는데, 먼저 뛴 사람이 달랐다.
치아미치안은 1922년 볼로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강연 원고는 도서관에 잠들어 있었고, 노벨상은 끝내 오지 않았다.
지금 지붕 위의 태양광 패널들이 그 유리병 실험의 답을 내놓고 있는데, 정작 그에게 그 답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는 게 좀 아깝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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