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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생일 선물로 산 양말 한 켤레 때문에, 한 청년은 자기 눈이 세상과 다르게 작동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1790년대 초, 존 돌턴은 어머니 생신 선물로 양말을 사드렸어요.
그는 퀘이커 교도였는데, 화려한 색보다 수수함을 원칙으로 삼는 기독교 교파라 파란색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웃이 그 색을 지적하자 어머니가 당황했어요.
실제 양말 색은 선명한 분홍색이었거든요.
돌턴은 비로소 자신이 세상과 색을 다르게 본다는 사실을 자각했어요.
오늘로 치면 온라인 쇼핑에서 '네이비'를 '검정'으로 잘못 보고 주문하는 그 경험이에요.
화학자가 되기 전, 그는 자기 눈을 실험 대상 1호로 삼았어요.
과학의 출발점은 실험실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드린 양말이었어요.

색맹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기 전, 돌턴은 자기 눈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그 단어를 직접 만들어내야 했어요.
1794년 10월 31일, 그는 맨체스터 학술협회에서 「색 시각에 관한 특별한 사실들」을 발표했어요.
인류 역사상 색맹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기록이었어요.
이 논문 이후로 색맹을 가리키는 '돌터니즘(Daltonism)'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어요.
그는 자기 동생도 같은 증상임을 확인하고, 이 상태가 유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제시했어요.
자기 가족을 비교 대상으로 쓴, 인류 최초의 유전 연구 중 하나예요.
귀가 잘 들리는 사람은 '청력'이라는 개념을 굳이 들여다볼 이유가 없어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그 기준을 처음으로 발견해요.
결함이 있었기에 그는 최초의 관찰자가 됐어요.

대학이 받아주지 않은 시골 소년이, 대학이 그 후 200년간 가르칠 이론을 혼자 써 내려갔어요.
돌턴은 1766년 영국 이글스필드의 가난한 직조공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직조공은 천을 짜는 사람으로, 당시 영국 농촌에서 흔한 하층 노동이었어요.
퀘이커 교도였기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입학은 법으로 금지됐어요.
국교회, 즉 영국 성공회를 믿지 않는 사람은 당시 대학에 발도 들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12세에 동네 학교 교사가 되며 독학으로 수학과 과학을 배워나갔어요.
1803년부터 1808년 사이, 그는 『화학철학의 새 체계』에서 원자론을 제안하며 수소를 기준값 1로 삼은 최초의 원소 상대원자량 표를 만들었어요.
원자는 모든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데, 돌턴은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에 처음으로 무게를 달았어요.
시장에서 과일을 무게로 팔듯, "수소 1개는 1, 산소 1개는 8"처럼 원자 사이의 비율을 숫자로 표현한 거예요.
오늘날 화학 수업에서 배우는 원자량 개념의 출발점이 바로 이 비율표예요.

돌턴의 마지막 실험 대상은 돌턴 자신이었어요.
그는 5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상 관측을 기록했고, 1844년 7월 27일 사망 전날까지 일지에 "약간의 비"라고 적었어요.
그리고 유언을 통해, 자신이 죽으면 눈을 해부해서 색맹의 원인을 확인해달라 요청했어요.
평생 그는 자기 색맹의 원인이 안구 체액에 푸른 물질이 섞인 탓이라고 가설을 세워왔어요.
하지만 부검 결과 체액은 완전히 정상이었어요.
가설은 틀렸어요.
그의 눈은 런던 왕립학회에 150년간 보관됐어요.
1995년, DNA 분석을 통해 그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하는 세포가 결손된 중색맹이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밝혀졌어요.
가설은 틀렸지만, 그의 눈은 200년 뒤 과학에 정답을 내줬어요.
평생 관찰자였던 그는 죽은 뒤에도 피관찰자로 남았어요.
분홍 양말 앞에서 그냥 웃어넘겼다면, 색맹이라는 단어도, 원자량 표도, 조금 다른 사람 손에서 나왔을 거예요.
가장 이상한 것을 가장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어쩌면 그게 과학의 전부일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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