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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화학의 판을 뒤집을 한 문장이 1811년에 이미 쓰여 있었어요.
아무도 읽지 않았을 뿐이에요.
아메데오 아보가드로는 그해 프랑스 학술지 Journal de Physique에 이런 가설을 발표했어요.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같은 부피의 기체라면 종류가 무엇이든 같은 수의 입자를 가진다."
오늘날 고등학교 화학 교과서에 실리는 바로 그 문장이에요.
하지만 당시 화학계의 반응은 침묵이었어요.
존 돌턴은 원자론을 막 정립한 영국의 거물이었고, 옌스 베르셀리우스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발언권이 큰 스웨덴의 화학자였어요.
이 두 사람이 아보가드로의 가설을 그냥 무시했어요.
이탈리아 변방 도시 토리노에서 쓴 논문이라는 게 문제였어요.
파리도 아니고 런던도 아닌 곳이었으니까요.
오늘날로 치면, 무명 블로거가 쓴 획기적 글이 조회수 0을 기록하며 검색 결과 하단에 묻혀버린 것과 같아요.

그는 스무 살에 변호사가 됐어요.
과학은 취미였어요.
아보가드로는 원래 법학도였어요.
가문의 전통에 따라 토리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796년 스무 살에 변호사 자격을 땄어요.
교회법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커리어는 완벽하게 법조계로 향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1800년경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해요.
그는 법률 서류 대신 수학책과 물리학 교재를 펼치기 시작했어요.
독학으로요.
잘 나가던 변호사가 "저는 사실 물리학을 하고 싶었어요"라며 이직하는 상황과 똑같아요.
9년을 그렇게 공부한 끝에 1809년,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베르첼리의 왕립대학 물리학 교수 자리를 얻었어요.
정규 과학 교육은 거의 받지 않은 채로요.
현대 화학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 '법학도 출신 독학자'였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도 놀라워요.
그리고 그 9년의 독학 끝에 나온 결과물이 2년 뒤, 1811년의 그 논문이에요.

아보가드로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해, 독일의 한 회의장에서 죽은 자의 논문이 조용히 배포됐어요.
1856년 아보가드로는 세상을 떠났어요.
생전에 그의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50년 전 논문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어요.
그런데 1860년, 카를스루에(독일 남서부의 도시)에서 역사상 첫 번째 국제화학자회의가 열렸어요.
유럽 전역의 화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였어요.
그 회의장에 스타니슬라오 칸니차로라는 이탈리아 화학자가 들어왔어요.
칸니차로는 아보가드로보다 한 세대 아래의 이탈리아 화학자예요.
그는 참석자 전원에게 팸플릿을 한 장씩 나눠줬어요.
팸플릿에는 50년 전 아보가드로가 발표한 가설이 담겨 있었어요.
당시 화학계는 원자량과 분자량을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를 놓고 수십 년째 논쟁 중이었어요.
팸플릿을 읽은 화학자들은 논쟁의 해답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챘어요.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단숨에 정설이 됐어요.
정작 그는 이미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아보가드로는 아보가드로 수를 모른 채 죽었어요.
오늘날 전 세계 고등학생이 외우는 숫자가 있어요.
6.022 × 10²³, 아보가드로 수예요.
1몰, 그러니까 어떤 물질이든 정해진 기준량 안에 들어있는 입자의 개수예요.
그런데 이 숫자를 처음 정밀하게 측정한 사람은 아보가드로가 아니에요.
1909년, 프랑스 물리학자 장 페랭이 브라운 운동 실험으로 이 값을 계산해냈어요.
페랭은 이 공로로 192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어요.
페랭은 숫자에 이름을 붙이면서 아보가드로를 선택했어요.
아보가드로의 가설이 없었다면 이 숫자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아이디어의 원조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아요.
전력 단위 '와트'도 제임스 와트가 직접 측정한 값이 아니라, 그가 개척한 증기기관 시대를 기리는 이름이에요.
아보가드로 수는 그가 계산한 숫자가 아니라, 그의 아이디어에서 자라난 열매예요.
생전에 아무도 읽지 않은 논문, 죽고 나서야 세상에 퍼진 가설, 그리고 본인이 계산한 적도 없는 숫자에 새겨진 이름.
매년 수억 명의 학생이 그 이름을 발음할 때, 정작 그 자신은 상상조차 못 했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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