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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만약 1896년 2월 파리 하늘이 맑았다면, 방사능은 한참 뒤에야 발견됐을 거예요.
그해 2월,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은 우라늄 결정을 사진 건판 위에 올리고 햇빛에 쬐어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파리 하늘이 4일 내내 흐렸어요.
할 수 없이 베크렐은 우라늄 결정과 아직 현상하지 않은 사진 건판을 검은 천에 싸서 서랍 속에 함께 넣어뒀어요.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싸두었으니, 건판에는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죠.
그런데 3월 1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꺼내 현상해봤더니 건판이 강하게 검게 노출되어 있었어요.
햇빛을 한 번도 보지 않았는데도요.
"도대체 뭐가 이 건판을 태운 거지?" 베크렐이 그 순간 느꼈을 당혹감을 떠올리면, 이 발견이 얼마나 예상 밖의 순간에 찾아왔는지 실감이 나요.
햇빛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이 드러난 거였어요.

그의 가설은 완전히 틀렸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20세기 물리학이 시작됐어요.
베크렐이 이 실험을 시작한 건 독일 물리학자 뢴트겐 때문이었어요.
뢴트겐은 1895년 11월, 몸을 투과해 뼈까지 찍히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광선을 발견하고 "엑스선"이라 이름 붙였는데, 이 발표가 유럽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놨어요.
베크렐은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세웠어요.
"우라늄이 햇빛을 받으면 엑스선을 내뿜는 건 아닐까?"
마치 야광 스티커가 빛을 흡수한 뒤 어둠 속에서 빛을 뿜듯, 우라늄도 햇빛을 먹고 나서 엑스선을 배출할 수 있다고 본 거예요.
베크렐의 아버지 에드몽은 평생 인광 물질, 빛을 흡수했다가 천천히 되뿜는 광물을 연구했고, 앙리는 그 수집품 중 하나인 우라늄염으로 실험하려 했어요.
그런데 서랍 속 건판이 검게 타버린 걸 보고 나서 가설이 통째로 무너졌어요.
햇빛이 없어도 우라늄은 스스로 뭔가를 방출하고 있었어요.
뢴트겐의 엑스선을 찾으러 갔다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 즉 물질 스스로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예요.
카페 와이파이를 잡으러 들어갔다가 건물에 깔린 초고속 전용 회선을 우연히 발견한 격이에요.
잘못된 질문이 더 중요한 답으로 이어진 거죠.

베크렐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기 가슴에 새겼어요.
문자 그대로.
1901년, 베크렐은 같은 연구를 함께 하던 퀴리 부부에게서 라듐 시료를 빌렸어요.
라듐은 유리 앰풀에 담긴 소량의 광물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 아무도 몰랐던 시절이라 베크렐은 그냥 조끼 안주머니에 넣고 6시간 동안 다녔어요.
집에 돌아와 옷을 벗었더니, 주머니가 닿았던 가슴 자리에 붉고 둥근 화상이 생겨 있었어요.
베크렐은 이 사실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했어요.
그러자 피에르 퀴리가 같은 실험을 자기 팔에 의도적으로 반복했어요.
"이 방사선이 살아있는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확인해보겠다"는 거였어요.
이 화상 보고들은 훗날 암 방사선 치료의 단서가 됐어요.
자신이 발견한 현상의 파괴력을 최초로 몸으로 증명한 피험자가 발견자 본인이었다는 게, 뭔가 아이러니하게 완벽한 이야기잖아요.
베크렐은 방사능을 발견했고, 방사능은 베크렐에게 자국을 남겼어요.

앙리 베크렐은 아버지의 연구실을 물려받았어요.
그리고 그 연구실을 전혀 다른 학문의 출발점으로 바꿔놓았어요.
베크렐 가문은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물리학 석좌를 증조부, 조부, 아버지 에드몽, 그리고 앙리까지 4대에 걸쳐 연이어 차지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한 집안이 4대째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의 정교수 자리를 이어받은 셈이에요.
앙리가 이 자리에 앉았을 때, 책상 위에는 아버지가 평생 모은 인광 광물 표본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아버지 에드몽은 인광, 빛을 흡수해 되뿜는 현상을 연구했어요.
앙리는 그 수집품을 가지고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고, 결국 방사능을 발견했어요.
가업으로 빵집을 물려받았는데 그 오븐으로 전혀 새로운 요리 장르를 개척한 후계자처럼요.
1903년 앙리 베크렐은 퀴리 부부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1908년, 55세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오늘날 방사성 붕괴의 세기를 재는 단위인 베크렐(Bq)이 그의 이름을 가져갔어요.
흐린 날 서랍 속에 넣어뒀던 건판 하나가, 그렇게 단위로 새겨질 만큼의 발견이었던 거예요.
어쩌면 진짜 위대한 발견 중에는, 준비된 사람이 우연을 알아본 순간들이 꽤 많은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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