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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드먼드 헬리가 없었다면,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아마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1686년, 왕립학회는 파산 직전이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국가 과학재단이 물고기 도감 한 권 출판하다가 예산을 다 써버린 상황이었죠.
막상 뉴턴의 원고는 준비됐는데, 인쇄할 돈이 없었어요.
헬리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어요.
편집도 직접 맡았고, 완벽주의자 뉴턴을 설득해 원고를 받아내는 것도 그가 감당했어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오늘날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히는 바로 그 책이에요.
헬리는 이미 20대 중반에 왕립학회 회원이었어요.
남아프리카 세인트헬레나 섬까지 직접 가서 남반구 별 목록을 만들어 온 젊은이였거든요.
뉴턴보다 열여섯 살 어렸지만, 뉴턴이 만유인력, 즉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관한 이론을 완성하도록 밀어붙인 건 헬리였어요.
결국 헬리가 자기 돈을 써서 인쇄한 그 책이 물리학의 역사를 바꿔버렸어요.

헬리는 자기 이름이 붙은 혜성을 평생 한 번도 자기 눈으로 본 적이 없어요.
1682년, 헬리는 밤하늘에 나타난 밝은 혜성을 관측했어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1531년, 1607년 기록까지 뒤졌더니 비슷한 혜성이 약 75~76년 주기로 반복해서 나타난 걸 발견했어요.
서로 다른 혜성이 아니라 같은 하나가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돌아온다는 결론이었죠.
그는 1705년 논문에 이렇게 남겼어요.
"이 혜성은 1758년 무렵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공정한 후대 사람들이 이것이 처음 예측된 것임을 인정해 줄 것이라 믿는다."
헬리는 1742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혜성이 돌아오기 16년 전이었어요.
자신이 맞다는 걸 끝내 확인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헬리는 천문학자 하나로 설명되기엔 너무 많은 일을 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잠수종을 직접 개발하고, 직접 타고 내려갔어요.
잠수종이란 뒤집어 놓은 컵처럼 공기를 가둔 채 물속에 집어넣는 장치예요.
헬리는 여기에 압축 공기통을 별도로 내려보내는 방식을 추가해서, 템스 강 바닥을 직접 탐험했어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는 대서양을 두 번 횡단했어요.
1698년부터 2년에 걸쳐 파라무어 호를 타고 대서양을 누빈 목적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과 실제 북쪽이 어디서 얼마나 다른지 측정하기 위해서였어요.
당시 선원들에게 이 차이를 모르면 항로가 틀어지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거든요.
그 결과물이 역사상 최초의 지자기 편차 지도예요.
오늘날로 치면 GPS 오류를 손으로 직접 보정해 전 세계 지도로 만든 셈이에요.
하지만 이 모든 업적은 "헬리 혜성" 세 글자 뒤에 완전히 가려져 버렸어요.

헬리가 죽고 16년이 지난 1758년 12월 25일 밤, 드레스덴 근처의 한 농부가 망원경을 하늘로 향했어요.
요한 게오르크 팔리치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였어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하늘을 보는 사람이었죠.
그날 밤 그가 포착한 희미한 빛이, 헬리가 53년 전에 예언한 바로 그 혜성이었어요.
그 소식이 유럽 전역에 퍼지자 사람들은 헬리의 이름을 기억했어요.
뉴턴 역학이 그냥 이론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임을 처음으로 온 세상에 보여준 순간이었어요.
혜성의 이름이 헬리 혜성이 된 건 바로 그 이후예요.
다음 번 헬리 혜성이 돌아오는 건 2061년이에요.
그 긴 시간을 기다려온 예언을 처음 세운 사람이, 자기 이름이 붙은 혜성을 평생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쩐지 묘하게 가슴에 남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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