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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스물여덟 살의 칼 폰 린네가 1735년에 내놓은 첫 책은 고작 11쪽이었어요.
그런데 그 얇디얇은 소책자의 제목은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 지구 위 모든 생명체를 분류하겠다는 선언이었어요.
당시 유럽 학자들에게 자연을 정리한다는 건 신의 창조물을 목록으로 만드는 일이었어요.
"신이 만든 것을 우리가 알아볼 수 있으려면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린네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광물이든 모조리 이름 붙이고 칸에 집어넣으려 했어요.
방법은 단순했어요.
모든 생물에게 속명(屬名)과 종명(種名), 두 단어짜리 라틴어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인간은 Homo sapiens, "지혜로운 사람"이 됐어요.
11쪽짜리 팸플릿은 린네 생전에 무려 12차례 개정됐어요.
1758년에 나온 10번째 판에 이르러서야 오늘날 우리가 쓰는 생물 분류 체계의 토대가 완성됐어요.
단 11쪽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지구 생물 전체의 이름표를 바꿔놓은 거예요.

린네가 이름 붙인 생물의 상당수는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표본에서 나왔어요.
린네는 혼자 전 세계 생물을 다 분류할 수 없었으니까, 가장 유망한 제자들을 세계 각지로 파견했어요.
후세 학자들은 이들을 "린네의 사도들"이라고 불러요.
총 17명이 떠났어요.
그리고 그 중 7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어요.
크리스토퍼 테른스트룀은 베트남 해안에서 병으로 사망했고, 페르 뢰플링은 베네수엘라에서, 프레드리크 하셀크비스트는 터키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테른스트룀의 아내는 린네를 직접 찾아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었어요.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난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는 거였어요.
그 이후 린네는 기혼 제자보다 독신 제자를 탐험에 보내려 했다고 전해져요.
린네 자신은 스웨덴 웁살라 대학 연구실에 앉아 제자들이 보내온 표본을 분류했어요.
그가 이름 붙인 생물들 뒤에는 그 이름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린네는 인간을 피부색에 따라 네 종류로 분류했어요.
1758년 《자연의 체계》 10판에서 그는 Homo sapiens를 유럽인(흰색), 아메리카 원주민(붉은색), 아시아인(노란색), 아프리카인(검은색)으로 나눴어요.
지구 위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이름을 붙이던 사람이 인간에게만은 계층을 매긴 거예요.
분류는 피부색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각 집단에게 타고난 기질과 어울리는 통치 방식까지 붙여놨어요.
유럽인은 "법에 의해 다스려진다", 아프리카인은 "충동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식이었어요.
당시 유럽 학자들은 이걸 편견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이 분류표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인종차별을 "자연적 질서"처럼 포장하는 데 쓰였어요.
린네 자신은 그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그 이름표는 오래도록 사람들을 옭아맸어요.

린네는 자신이 쓴 책 표지의 이름을 보면서도 그게 자신인지 알아보지 못했어요.
1774년 첫 번째 뇌졸중 이후 기억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몇 해 뒤에는 자기 정체성까지 흐릿해진 거예요.
Carolus Linnaeus라는 저자 이름이 눈앞에 있어도 그걸 자기 자신과 연결하지 못했어요.
그는 자신을 3인칭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마치 오래전에 알던 유명인을 떠올리듯 "린네는 참 대단한 학자지" 하는 식이었어요.
지구 위 1만여 종의 생물에게 이름을 붙인 사람이 정작 자기 이름을 잃어버린 거예요.
린네는 1778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이름 붙인 생물들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달고 살아가고 있어요.
이름이 곧 존재라고 믿었던 사람이 이름을 잃고도 한동안 살아 있었어요.
그러면 그 사이에 그는 무엇이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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