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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과학자가 아니에요.
천 장수예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그가 렌즈를 갈기 시작한 건, 비단의 올이 고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어요.
당시 상인들은 단순한 확대경으로 천을 검사했어요.
그런데 레이우엔훅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어요.
더 크게, 더 선명하게 보고 싶었거든요.
결국 그는 직접 렌즈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렌즈를 갈고 다듬는 기술은 당시에도 존재했지만, 레이우엔훅은 유리를 다루는 방식에서 남들과 달랐어요.
그가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예요.
그렇게 만든 현미경이 세상을 바꿨어요.
270배까지 확대할 수 있었는데, 당시 일반 현미경은 고작 20~30배였거든요.
그 렌즈로 천 대신 빗물 한 방울을 올려봤더니,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이 거기 있었어요.

1683년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발견한 건 세균이었어요.
그것도 자기 치아 사이를 직접 긁어낸 물질로요.
지금 생각해도 꽤 용감한 실험이에요.
그 이전인 1674년 무렵, 그는 이미 연못 물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은 생물들을 발견했어요.
그때도 세상이 발칵 뒤집혔는데, 1683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갔어요.
치아 사이의 이물질, 즉 치태를 현미경에 올렸더니 세균이 보였어요.
그는 이것들을 "미소동물(animalcules)"이라고 불렀어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생물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세균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바로 이거예요.
레이우엔훅은 이 광경을 이렇게 기록했어요.
"나는 살아 움직이는 아주 작은 동물들을 보았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놀라울 만큼 우아했다."
인류 역사상 세균을 눈으로 본 최초의 기록이에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입안에도 수십억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어요.
레이우엔훅이 없었다면,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레이우엔훅은 라틴어를 몰랐어요.
당시 과학계의 공용어가 라틴어였는데, 그는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몰랐거든요.
그래서 그냥 네덜란드어로 편지를 써서 영국 왕립학회에 보냈어요.
영국 왕립학회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기관이에요.
뉴턴과 보일 같은 사람들이 회원으로 있던 곳이에요.
그 기관에 학위 하나 없는 포목상이 "눈에 안 보이는 생물을 봤어요"라는 편지를 보낸 거예요.
처음엔 당연히 의심했어요.
그도 그럴 게, 지구상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물이 있다는 주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레이우엔훅의 편지는 달랐어요.
관찰 날짜, 물의 출처, 생물들의 움직임 방향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어요.
이건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철저한 기록이었어요.
결국 왕립학회는 직접 검증단을 현장에 파견했어요.
그들이 현미경을 들여다본 결과는 레이우엔훅이 말한 그대로였어요.
그는 평생 190편이 넘는 편지를 왕립학회에 보냈어요.
결국 학위도 없고 라틴어도 모르는 포목상이 왕립학회 정회원이 됐어요.

레이우엔훅은 평생 500개가 넘는 현미경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중 단 한 번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제자도 없었어요.
1723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는 왕립학회에 마지막 편지를 보냈어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렌즈를 만드는 비밀에 대한 말은 단 한 줄도 없었어요.
그가 떠난 뒤 유럽의 현미경 기술은 수십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어요.
그의 270배 배율을 따라잡는 데 과학계는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오늘날로 치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혼자 발명한 사람이 설계도를 남기지 않고 간 것과 비슷해요.
레이우엔훅이 남긴 현미경 중 일부는 지금도 박물관에 남아 있어요.
과학자들이 현대 기술로 역설계해서 그 비밀을 밝히려 시도하고 있어요.
천 장수 하나가 4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게, 이상하게 통쾌하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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