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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자존심 강했던 왕이 외국인 천문학자에게 프랑스 과학의 심장을 맡겼어요.
1669년, 루이 14세는 이탈리아 반도 북서쪽의 작은 마을 페리날도 출신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를 파리로 불러들였어요.
당시 유럽에서 카시니만큼 하늘을 정밀하게 관측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파리 천문대는 루이 14세가 "프랑스는 과학 강국이다"를 세상에 보여주려고 지은 건물이에요.
막대한 돈을 썼는데, 정작 그 건물을 운영할 적임자가 프랑스 안에 없었어요.
그래서 이탈리아인이 프랑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기관 1호 수장이 됐어요.
카시니는 처음에 임시로 왔어요.
그런데 파리에 뿌리를 내리면서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하고, 이름도 장-도미니크 카시니로 바꿨어요.
외국에서 영입된 사람이 프랑스 천문학의 상징 자체가 된 거예요.

카시니의 가장 유명한 발견은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빈 공간"이에요.
1675년, 그는 토성의 고리를 관찰하다가 고리 한가운데에 검은 틈이 있다는 걸 알아챘어요.
고리가 하나의 납작한 원반이 아니라, 중간에 빈 공간이 있는 두 층이었던 거예요.
이 틈은 지금도 카시니 간극(Cassini Division)이라고 불려요.
폭이 약 4,800킬로미터로, 지구의 달과 비슷한 크기예요.
피자 도우처럼 보이는 토성 고리 사진에서 그 검은 선 하나가 달만 한 빈 공간이라는 얘기예요.
카시니는 그 이전에도 토성 주변에서 여러 위성을 처음 발견했어요.
이아페투스, 레아, 테티스, 디오네 같은 토성의 큰 달들이 모두 그의 기록에 처음 등장해요.
2017년까지 토성을 탐사한 NASA 우주선 이름이 카시니-하위헌스(Cassini-Huygens)인 건 이 때문이에요.

자기 부하 직원의 발견을 직접 나서서 틀렸다고 한 상사, 그게 카시니예요.
1676년, 파리 천문대에서 카시니 아래에서 일하던 덴마크 천문학자 올레 뢰머는 목성의 위성 이오(Io, 목성 주위를 도는 달 중 하나)를 관찰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이오가 목성 뒤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주기가 예측과 조금씩 달랐거든요.
뢰머는 질문을 바꿨어요.
"이오 궤도가 불규칙한 게 아니라,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닐까?"
지구가 목성에서 멀어질수록 빛이 도달하는 데 더 오래 걸리니까, 이오가 늦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는 이 관측을 바탕으로 빛의 속도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수치로 계산해냈어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맞았어요.
훗날 과학자들이 뢰머의 값을 정밀하게 확인하면서 그게 옳다는 걸 증명했거든요.
그런데 카시니는 뢰머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카시니 자신도 이오의 타이밍 이상함을 먼저 눈치챘는데, 그 원인이 "빛의 속도" 때문이라는 결론을 거부한 거예요.
"빛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개념이 당시 많은 과학자들에게 여전히 낯설었던 시대였어요.
카시니는 1712년에 세상을 떠났고, 뢰머를 틀렸다던 그 주장도 함께 묻혔어요.
역사는 결국 뢰머의 손을 들어줬어요.

이 이야기는 역설을 넘어 거의 코미디예요.
조반니 카시니가 파리 천문대에서 축적한 측량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아들 자크 카시니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어요.
지구는 북극·남극 쪽으로 길쭉한 모양이라는 거예요.
영국의 아이작 뉴턴은 정반대를 주장했어요.
"지구는 자전하니까 적도 쪽이 불룩하고 극 쪽이 납작해야 해."
프랑스와 영국의 과학적 자존심 싸움이 지구 모양 논쟁으로 번진 거예요.
1730년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결론을 내리기로 했어요.
북극권 가까이(지금의 핀란드 라플란드)와 적도 부근(페루)에 각각 측량 원정대를 보낸 거예요.
두 지역에서 위도 1도에 해당하는 실제 거리를 재면, 지구가 어느 쪽으로 늘어났는지 알 수 있거든요.
결과는 뉴턴의 완승이었어요.
지구는 극 쪽이 납작하고 적도 쪽이 볼록한 모양으로 확인됐어요.
카시니 가문의 측량과 해석은 틀렸어요.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이에요.
조반니의 손자 세자르-프랑수아 카시니 드 튀리는 이 원정 결과를 받아들이고, 프랑스 전역을 정밀하게 다시 측량해 역사상 최초의 국가 단위 지형도를 완성했어요.
가문이 틀렸음을 증명한 바로 그 방법론으로, 가문이 직접 프랑스 지도를 만들어낸 거예요.
카시니라는 이름은 틀린 이론 위에 새겨진 게 아니에요.
틀렸다는 걸 알고 나서도 측량을 멈추지 않은 사람들 위에 새겨진 이름이에요.
그 손자가 지도를 완성했을 때, 할아버지의 이름을 지우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더 새기고 싶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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