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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논쟁에서, 이긴 쪽은 아인슈타인이 아니었어요.
닐스 보어는 1920년대에 하나의 주장을 세상에 내놨어요.
전자 같은 작은 입자는 누군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디에 있는지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동전을 던져 손바닥으로 덮기 전까지는 앞면인지 뒷면인지 모르는 것처럼요.
단 이 경우엔 덮기 전까지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인 상태예요.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이에요. 자연은 확실한 답이 아니라 확률로만 기술된다는 생각이에요.
아인슈타인은 이걸 평생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그의 유명한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자연엔 반드시 확실한 법칙이 있고 우리가 아직 모를 뿐이라는 믿음이었어요.
두 사람은 1927년부터 거의 30년 동안 싸웠어요.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사고실험으로 보어의 이론을 공격하면, 보어가 밤새 고민해서 반박했어요.
그때마다 보어가 이겼어요.
보어는 한번은 이렇게 응수했다고 해요.
"아인슈타인, 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지 마세요."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싸움이 아니었어요. 오늘날 스마트폰 안의 반도체가 보어의 이론 위에서 작동하거든요.

1943년 가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작은 어선에 몸을 숨기고 밤바다를 건넜어요.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한 뒤 유대계 덴마크인을 체포하기 시작했어요.
보어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었어요.
누군가 보어에게 귀띔해줬어요.
"사흘 안에 당신 이름이 체포 명단에 오릅니다."
그날 밤, 보어는 가족과 함께 덴마크 해안을 떠나 스웨덴으로 탈출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가 난민처럼 바다를 건넌 밤이었어요.
스웨덴에 도착하자 영국 정보부가 손을 내밀었어요.
보낸 건 모스키토 폭격기였어요. 전투기처럼 빠르지만 사람이 앉을 공간은 폭탄칸뿐인 작은 항공기였어요.
파일럿이 이륙 전 설명했어요.
"고도가 높아지면 반드시 산소마스크를 쓰세요."
보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보어는 당시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역대 가장 큰 머리"로 유명했어요.
마스크가 제대로 맞지 않았어요.
무선 통신도 들리지 않았어요.
고도가 올라갔고, 보어는 산소 부족으로 조용히 기절했어요.
파일럿이 이상함을 느끼고 급강하한 뒤에야 보어는 깨어났어요.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머리 크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한 밤이었어요.

미국에 도착한 보어는 더 이상 닐스 보어가 아니었어요.
미국 정보부가 그에게 가명을 줬어요. 니콜라스 베이커. 거리에선 "닉"이라 불렸어요.
그가 합류한 곳은 맨해튼 프로젝트였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만들기 위한 극비 계획이었어요.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로스앨라모스 연구소에서, 보어는 핵폭탄의 물리학적 설계를 도왔어요.
그는 자기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어요.
전쟁을 끝낼 무기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인류가 이 무기를 영원히 손에 쥐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요.
그러면서 보어의 머릿속엔 다른 계산이 자랐어요.
소련이 이 폭탄의 존재를 나중에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더 강한 폭탄을 만들려는 경쟁이 시작되지 않을까?
보어는 답을 찾기 위해 워싱턴으로 갔어요.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두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어요.

보어가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그를 스파이 혐의자로 만들었어요.
편지엔 전쟁 중에 하기 어려운 말이 담겨 있었어요.
"소련에게 핵폭탄의 존재를 먼저 알려주세요."
보어의 논리는 이랬어요.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더 강한 폭탄을 만들려 할 거예요.
지금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만이 핵 경쟁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이었어요.
루스벨트는 보어를 직접 만났어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았어요.
처칠의 반응은 달랐어요.
그는 보어가 소련 스파이일 수 있다며, 그의 활동을 감시하고 체포까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어요.
핵전쟁을 막으려 한 물리학자가 스파이로 의심받은 거예요.
결국 두 지도자 모두 제안을 거절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 소련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핵폭탄을 개발했어요. 보어가 1944년에 경고한 그 미래가 그대로 현실이 됐어요.
보어는 1962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날 아침, 그의 작업실 칠판엔 아인슈타인과 싸웠던 사고실험 스케치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어요.
그는 편지를 보냈고, 세상은 읽지 않았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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