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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피타고라스는 천재였지만, 0을 몰랐어요.
삼각형의 비밀을 풀고 별의 움직임을 계산했던 그가 정작 "없음"이라는 개념은 다루지 못했어요.
그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 당시엔 아무도 그 질문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게 진짜 아이러니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숫자는 "무언가의 개수"였어요.
사과 다섯 개, 소 열 마리, 병사 이천 명.
숫자가 존재하려면 반드시 뒤에 셀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죠.
사과가 하나도 없을 때는 그냥 "사과가 없는 것"이지, 숫자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침묵"을 악보에 음표로 적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에요.
"아무것도 없음"에 이름을 붙인다는 발상 자체를 그들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맹점은 수학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리스인들은 0 없이도 피라미드 건축에 필요한 기하학을 풀고, 일식을 예측했으니까요.
하지만 0이 없으면 자릿수를 표기할 방법이 없어요. 305를 쓰려면 3과 5 사이 "비어있는 자리"를 표시할 무언가가 꼭 있어야 하거든요.
그 결과가 로마 숫자예요.
1999를 로마 숫자로 쓰면 MCMXCIX입니다.
이걸로 곱셈을 해보면, 왜 고대 로마 회계사들이 끔찍한 삶을 살았는지 바로 이해가 돼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0에게 수학적 권리를 준 사람은 인도의 수학자 브라흐마굽타였어요.
628년, 그가 쓴 브라흐마스푸타시단타에서 0을 처음으로 본격적인 숫자로 다루기 시작했어요.
브라흐마스푸타시단타는 "브라흐마의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뜻의 수학·천문학 저작입니다.
그 이전까지 0은 그냥 빈 자리 표시였어요.
숫자들 사이 공간을 채우는 기호일 뿐이었고, 계산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어요.
브라흐마굽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그는 "어떤 수에 0을 더하거나 빼도 그 수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0이 된다"라고 선언했어요.
지금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선언이 1000년 이상의 공백을 메운 거예요.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는 "0을 0으로 나누면 0"이라는 실수도 저질렀어요. 현대 수학에서 0으로 나누는 건 정의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인도에서 0이 먼저 등장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인도 철학에는 "슌야(śūnya)", 즉 "공(空)"이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불교와 힌두교 전통에서 "없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의 완전한 상태로 보는 시각이죠.
그 철학이 수학자에게 "없음에도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허락을 준 셈이에요.

0이 마침내 유럽에 도착했을 때, 유럽은 0을 금지했어요.
1299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인 조합이 아라비아 숫자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했어요.
아라비아 숫자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0, 1, 2, 3, 4, 5, 6, 7, 8, 9입니다. 로마 숫자가 아닌, 지금 당신이 스마트폰으로 보는 바로 그 숫자들이에요.
이유는 황당하게도 보안 문제였어요.
0은 6이나 9로 쉽게 바꿀 수 있고, 1 앞에 0을 하나 붙이면 10이 되어버려요.
당시 잉크로 손으로 쓰던 계약서에서 이런 변조가 실제로 일어났거든요.
그런데 금지된 이 숫자 체계는 너무 편리해서, 상인들이 몰래 계속 썼어요.
아라비아어로 0을 뜻하는 단어 "시프르(sifr)"가 "암호", "비밀 코드"라는 뜻의 영어 단어 cipher(사이퍼)의 어원이 된 게 이 때문이에요.
불법 숫자를 몰래 쓰다 보니, 그 숫자가 곧 비밀의 언어가 된 거죠.
결국 0은 금지 속에서도 퍼져나갔어요.
유럽이 아라비아 숫자 체계를 받아들이면서 복잡한 과학 계산이 가능해졌고, 그게 16~17세기 과학혁명의 수학적 토대가 됐어요.
불법이었던 숫자가 세상을 바꾼 셈이죠.

지금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는 화면은, 0과 1만으로 만들어졌어요.
컴퓨터는 모든 정보를 이진법, 즉 0과 1의 조합으로 저장하고 처리하거든요.
글자 하나, 픽셀 하나, 소리 한 조각까지 전부 수십억 개의 0과 1로 쪼개진 데이터입니다.
이진법에서 0이 핵심인 이유는 단순해요.
전기 신호는 "켜짐"과 "꺼짐" 두 가지 상태밖에 없어요.
그 "꺼짐" 상태가 바로 0이거든요. 0이 없으면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요.
1000년 동안 발견하지 못했고, 발견하고 나서도 금지당했어요.
지금은 그게 없으면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이 글도 존재하지 않아요.
인류가 0을 발견하는 데 그토록 오래 걸린 건, 어쩌면 0이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려면, 수학 실력보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먼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손안의 스마트폰 속에서, 0은 초당 수십억 번 조용히 존재를 증명하고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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