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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구카이는 당대 일본 최고 엘리트 코스를 스스로 버린 사람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수능 수석으로 최고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이, 몇 달 만에 자퇴하고 산속 동굴로 들어간 거예요.
774년 지금의 시코쿠(四国) 지방에서 귀족 집안에 태어난 구카이는 18세에 다이가쿠료(大学寮)에 입학했어요.
다이가쿠료는 국가 관료를 길러내는 일본 최고 교육기관으로, 입학 자체가 출세를 보장했어요.
그런데 구카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뒀어요.
계기는 한 승려에게서 전해받은 수행법이었어요.
코쿠조구몬지호(虚空蔵求聞持法)라고 불리는 이 수행은, 허공장보살의 진언(비밀 주문)을 100만 번 외우면 모든 경전이 머릿속에 새겨진다는 내용이에요.
구카이는 그 주문을 외우러 시코쿠의 해안 동굴과 깊은 산속을 전전했어요.
훗날 그가 수행했다는 동굴은 지금도 시코쿠 88곳 성지순례 코스 중 하나로 남아 있어요.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관직이 아니라 깨달음이었어요.
경전을 모두 외울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겐 어떤 출세보다 가치 있었던 거예요.

당나라 장안의 청룡사(靑龍寺)에서 밀교를 집대성한 스승 혜과(惠果)는 구카이를 처음 보는 날, 수천 명의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드디어 왔어."
구카이가 804년 당나라로 떠날 때, 일본 정부의 공식 유학 기간은 20년이었어요.
하지만 혜과는 이미 병이 깊었어요.
그래서 보통 제자들이 수십 년 걸려 익히는 밀교(密敎)의 가르침을 구카이에게 단 6개월 만에 몽땅 전수했어요.
밀교는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이에요.
스승의 몸짓, 손 모양(수인/手印), 제의 절차, 만다라(우주의 진리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표현한 그림)까지 스승에서 제자로 직접 이어지는 전통이에요.
그것이 "비밀(密)"인 이유예요.
혜과는 그 모든 걸 넘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구카이는 20년 유학 계획을 2년 만에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왔어요.
배울 게 더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없던 산꼭대기가 오늘날 117개 사원이 밀집한 종교 도시가 됐어요.
구카이 혼자 만든 거예요.
816년, 구카이는 사가 천황(嵯峨天皇)에게 직접 편지를 썼어요.
"저에게 고야산(高野山)을 주시면, 그곳에 수행과 교육의 도량을 만들겠습니다."
천황은 허락했어요.
고야산은 오사카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800미터의 산꼭대기였어요.
당시엔 사람도, 길도, 건물도 없는 완전한 오지였어요.
구카이는 거기에 사원 단지와 수행자 거주 구역을 짓기 시작했어요.
오늘날 고야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요.
밀교에서 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에요.
수행자가 속세와 단절하고 우주의 진리와 연결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구카이에게 그 험준한 오지 자체가 수행의 조건이었어요.

매일 아침 6시와 저녁 6시, 스님 한 명이 밥상을 들고 고야산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요.
그 밥상은 835년에 눈을 감은 구카이에게 가는 거예요.
구카이의 신도들은 그가 죽지 않았다고 믿어요.
입정(入定)에 들었다고 표현해요.
입정이란 가장 깊은 명상 상태로, 구카이는 지금도 그 상태에서 우리 곁에 있다는 거예요.
835년, 구카이가 고야산에서 숨을 거뒀을 때 제자들은 그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모셨어요.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밥을 올렸어요.
그게 지금까지 1200년 동안 이어지고 있어요.
그의 영묘는 오쿠노인(奥の院)이에요.
고야산 안쪽 2킬로미터 삼나무 숲 참배길 끝에 있는 구카이의 영묘예요.
그 길 양쪽에는 도쿠가와 가문을 비롯한 수만 개의 무덤이 줄지어 있어요. 모두 "구카이 곁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곳을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죽은 뒤에도 1200년간 사람들이 곁에 있고 싶어하는 남자.
그에게 오늘 아침도 밥 한 끼가 올라갔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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