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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년 수행 끝에 신란이 내린 결론은 "나는 이 방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절망이 29세의 그를 새벽 길로 내보냈다.
교토 번화가 한복판에 롯카쿠도(六角堂) 라는 작은 불당이 있었다.
관음보살을 모신 육각형 건물로, 지금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신란은 그곳까지 100일 동안 날마다 새벽에 혼자 걸어갔다.
신란이 절에 들어간 것은 9살 때였다.
경전을 외우고 계율을 지키며 2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세월이 쌓일수록 자신의 한계만 더 선명하게 보였다.
결국 그는 관음보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합니까."
100일 동안, 매일 새벽에.

100일이 다 되던 날 아침, 신란은 꿈을 꿨다.
관음보살이 나타나 딱 한마디를 했다.
"법연(法然) 에게 가라."
법연은 당시 교토에서 가장 논쟁적인 승려였다.
수행이나 기도 대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 글자만 외우면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기존 불교의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신란은 법연의 가르침에서 20년 동안 찾지 못하던 답을 발견했다.
그런데 1207년, 조정이 이 무리를 탄압했다.
승원의 법난(承元의 法難), 제자들이 유배되고 일부는 처형된 사건이다.
신란도 유배됐고, 승적이 박탈됐다.
20년을 쌓아온 승려 자격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신란의 반응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유배지에서 그는 결혼을 선택했다.
에시니(恵信尼)와 혼인했고, 평생 함께 살았다.
당시 승려의 결혼은 금기였다.
하지만 신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승려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다(非僧非俗)."
승적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 경계 자체를 넘어선 것이라고 봤다.

신란의 주장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다.
"선한 사람도 구원받는다. 하물며 악한 사람이야."
악인정기(悪人正機).
"악한 사람이 구원의 정확한 대상"이라는 뜻이다.
착한 사람이 먼저, 나쁜 사람은 조건부라는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말이다.
신란의 논리는 이랬다.
자기 힘으로 수행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부처의 자비가 별로 필요 없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 죄를 짓고 또 짓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아미타불이 건지러 오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신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행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것은 부처의 자비뿐이다."
이 말은 당시 사회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다.
절에서 수행할 여유가 없는 농민, 살생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어부와 사냥꾼, 스스로를 평생 죄인이라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에게 신란의 말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신란이 남긴 기록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신란은 제자를 한 명도 가진 적이 없다(弟子一人もなし)."
수천 명이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데, 제자가 없다고 쓴 것이다.
신란의 논리는 이랬다.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이 나라면,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라 아미타불의 제자다.
이 구절은 신란 사후 제자들이 그의 말을 기록한 《탄니쇼(歎異抄)》 에 담겨 있다.
정토진종의 핵심 문헌으로, 지금도 많이 읽힌다.
신란은 91세까지 살았고, 죽기 전까지 사원을 짓지 않았다.
제도를 만들지 않았고, 자신이 종파를 세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전통이 오늘날 정토진종(浄土真宗), 일본에서 신도 수가 가장 많은 불교 종파가 됐다.
자신의 제자라 부르길 거부한 사람들이 지금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신란이 원했던 형태의 기억이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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