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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동생이 공장 폭발로 죽은 날 이후에도, 알프레드 노벨은 실험을 멈추지 않았어요.
1864년 9월,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연구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났어요.
건물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다섯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어요.
그중 하나가 그의 스무 살 남동생 에밀이었어요.
아버지 임마누엘은 그 소식을 듣고 뇌졸중으로 쓰러졌어요.
이후 반신불수로 몇 년을 지내다 세상을 떠났어요.
당시 알프레드가 다루던 물질은 니트로글리세린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건드리기만 해도 터지는 액체 폭탄이에요.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살짝 흔들리기만 해도 폭발했어요.
스웨덴 당국은 사고 이후 시내에서의 연구를 즉시 금지했어요.
그러자 노벨은 실험실을 배에 싣고 멜라렌 호수 위로 나갔어요.
배 위에서 실험을 계속했죠.
동생이 죽은 직후, 그는 호수 위로 실험실을 옮겼어요.
이 장면이 알프레드 노벨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줘요.

다이너마이트 하나가 노벨을 19세기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부가 나중에 그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1867년, 노벨은 마침내 답을 찾았어요.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라는 흙에 섞으면 충격에도 폭발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규조토는 마치 스펀지처럼 액체를 빨아들이는 흙이에요.
그 상태에서는 아무리 흔들어도 안전했어요.
이게 바로 다이너마이트예요.
광산 회사들이 줄줄이 계약을 요청했어요.
기존 화약보다 몇 배 강력하면서, 이제 안전하게 운반까지 됐으니까요.
노벨은 특허를 들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어요.
나라마다 공장을 세우고, 현지 파트너를 구하고, 생산을 시작했어요.
생전에 세운 공장만 21개국에 90개였어요.
그런데 다이너마이트는 광산에서만 쓰이지 않았어요.
전쟁터에서도 쓰였어요.
노벨이 원하든 아니든, 그가 만든 폭발물이 사람을 죽이는 데도 쓰이기 시작했어요.
노벨은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했어요.
반전 운동가들과 편지를 나눴고, 전쟁을 혐오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어요.
하지만 그의 재산은 해마다 불어났어요.

알프레드 노벨은 살아서 자신의 부고를 읽었어요.
1888년, 알프레드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했어요.
그런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실수를 저질렀어요.
루드비히가 아닌 알프레드가 죽었다고 착각한 거예요.
그 신문은 알프레드의 부고를 인쇄했어요.
제목은 이랬어요. "죽음의 상인이 죽었다."
그 기사엔 세상이 그를 어떻게 기억할지가 쓰여 있었어요.
다이너마이트로 전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든 사람으로요.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건이 노벨을 바꿔놨다고 말해요.
그가 실제로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7년 후, 그는 실제로 무언가를 했어요.

1895년 11월, 알프레드 노벨은 재산 대부분을 가족에게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파리의 한 클럽에서, 변호사도 없이, 증인 네 명만 두고 유언장에 서명한 거예요.
당시 그의 재산은 약 3,100만 스웨덴 크로나였어요.
오늘날 환산하면 수천억 원이 넘는 규모예요.
그걸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그리고 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고 했어요.
가족들은 반발했어요.
유언장 형식이 허술했고, 재산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었으니까요.
법적 다툼이 5년 넘게 이어졌어요.
노벨은 1896년 12월,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혼자 세상을 떠났어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어요.
그리고 1901년, 첫 번째 노벨상이 수여됐어요.
다이너마이트로 재산을 쌓은 사람이 만든 상이, 인류에게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 유언장에는 이유가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아요.
"죽음의 상인"이라는 말이 그를 바꿔놨는지는 영영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자신의 부고를 먼저 읽은 사람이 '평화상'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답처럼 느껴져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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