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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3세기에 교황이 비밀리에 책 한 권을 주문했어요.
그것도 당시 교회가 위험하다고 여기던 수도사에게.
1266년, 교황 클레멘스 4세는 수도사 한 명에게 은밀한 메시지를 보내요.
"당신이 연구하는 것들을 글로 써서 나에게만 보내주시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교황이 직접 한 학자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는 건,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비주류 과학자에게 "당신 연구, 저한테만 먼저 보고하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아요.
그 수도사가 바로 로저 베이컨이에요.
프란치스코회 소속 수도사였는데, 교단에서는 이미 그의 연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어요.
베이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18개월 만에 세 권의 방대한 책을 완성해서 교황에게 보냈어요.
문제는 그 책이 교황 손에 닿기 전에, 클레멘스 4세가 세상을 떠났다는 거예요.
평생에 단 한 번 찾아온 기회가 그렇게 사라졌어요.

그 책이 세상에 공개된 건 440년이 지난 뒤였어요.
그리고 내용을 읽은 18세기 학자들은 경악했어요.
망원경이 유럽에 처음 등장한 건 1608년이에요.
그런데 베이컨은 1260년대에 이미 "렌즈를 적절히 배열하면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까이 볼 수 있다"고 썼어요.
안경도 마찬가지예요. 시력이 약한 노인을 위해 볼록 렌즈로 글씨를 크게 볼 수 있다고 정확히 설명했는데, 실제 안경 발명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예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사람이 탈 수 있는 기계 새가 하늘을 날 것"이라고 썼고,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수레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도 썼어요.
비행기와 자동차를 13세기에 예언한 거예요.
그리고 화약이에요.
베이컨은 유럽 학자 중 처음으로 화약의 성분과 폭발 원리를 글로 남겼어요.
폭발 사고를 막으려고 성분 비율을 암호로 써놓기까지 했는데, 그가 이것을 어디서 알았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베이컨을 가둔 건 이단 심판소도, 왕도 아니었어요.
그를 감금한 건 그가 평생 섬기던 프란치스코회 자체였어요.
수도회는 1278년경 베이컨을 "수상한 새로운 것들"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가뒀어요.
수감 기간은 기록마다 다르지만 14년이라고 전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집에서 자기 식구에게 잡힌 거예요.
베이컨이 위험하다고 여겨진 이유는 그의 방법론에 있었어요.
당시 학문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고 해석하는 방식이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했으니 진리다"라는 식이었죠.
그런데 베이컨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실험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권위에 기대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거예요.
오늘날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13세기엔 이것이 체제를 흔드는 발언이었어요.

교황의 요청으로 쓴 그 책, 『오푸스 마이우스』가 처음 출판된 건 1733년이에요.
베이컨이 죽은 지 약 440년이 지난 뒤였어요.
"오푸스 마이우스"는 라틴어로 "위대한 작업"이라는 뜻이에요.
책 안에는 실험으로 지식을 탐구해야 한다는 주장,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서술, 광학과 천문학에 대한 놀랍도록 정확한 분석이 가득했어요.
18세기 학자들은 읽고 나서 이 수도사가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인지 혼란스러워했다고 해요.
베이컨이 평생 외쳤던 말은 하나였어요.
"실험 없이는 아무것도 충분히 알 수 없다."
그는 이것을 "실험 과학"이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이에요. 갈릴레오보다 300년 전, 뉴턴보다 400년 전에.
아이러니한 건 이거예요.
그를 가둔 수도원 창문 너머로, 베이컨은 렌즈를 통해 별을 관찰했을 거예요.
500년 뒤 사람들이 손에 쥐게 될 망원경을 머릿속으로 설계하면서.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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