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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에드워드 윌슨이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건 열정 때문이 아니라 사고 때문이었다.
열 살 무렵, 낚시를 하다가 물고기 지느러미에 오른쪽 눈을 찔렸다.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10대 초반, 이번엔 유전 질환으로 고음역대 청력도 사라졌다.
새를 연구하고 싶었던 소년에게 이건 재앙이었다.
새는 멀리서 봐야 하고, 새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윌슨에게 남은 건 왼쪽 눈 하나와 낮은 소리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눈앞의 땅으로 고개를 숙였다.
거기에 개미가 있었다.
작고, 가까이 있고, 소리 없이 움직이는 존재.
앨라배마 숲을 기어다니며 개미 군락을 들여다보던 소년은 결국 하버드 교수가 됐다.
그리고 "개미학"이라는 분야에서 지구상 누구보다 많이, 깊이 알게 됐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썼다. "신이 나를 작은 것들의 연구로 인도했다고 느꼈다."

1978년 미국 최대 과학자 학술대회 무대 위, 윌슨의 머리 위로 얼음물 한 양동이가 쏟아졌다.
단상에 오른 과학자에게 청중이 물을 끼얹은 것이다.
3년 전인 1975년, 윌슨은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단순했다. 동물의 사회적 행동은 진화와 유전자로 설명된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라고.
세상이 뒤집혔다.
공격은 바깥에서만 온 게 아니었다.
같은 하버드 캠퍼스에 있던 동료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앞장서서 비판했다.
이들이 결성한 단체 '과학을 위한 인민'은 윌슨을 나치 우생학의 후예로 몰았다.
"당신의 이론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정당화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윌슨이 주장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는 "유전자가 모든 걸 결정한다"고 한 적이 없다.
"인간 행동에도 진화적 토대가 있다"고 했을 뿐이었다.
물벼락을 맞은 날, 마이크를 잡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2010년, 윌슨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이론을 스스로 뒤집었다.
그가 30년 넘게 지지해온 이론은 친족선택설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개미가 자기 목숨을 버려 여왕개미를 지키는 건, 여왕개미가 자신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공유하는 친척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960년대 윌리엄 해밀턴이 수학 공식까지 만든 이론이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토대가 됐다.
그런데 윌슨이 갑자기 말했다. "그 이론이 틀렸습니다."
그는 새로운 개미 연구 결과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친족이 아닌 개체들끼리도 고도로 협력하는 군락이 존재했다.
진화의 단위가 개체 유전자가 아니라 집단 전체일 수 있다는 집단선택설이 더 잘 맞았다.
도킨스는 즉각 반격했다.
"윌슨의 논문은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하지만 윌슨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30년간 개미 군락을 직접 연구했습니다. 수학 공식이 아니라 자연을 보세요."
자신이 옳다고 믿어 온 이론을, 가장 많이 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스스로 버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것도 80대에.

2016년, 86세의 윌슨은 마지막 대형 제안을 내놓았다.
지구의 절반을 인간 손이 닿지 않는 자연으로 남기자는 것이었다.
책 제목도 그냥 《하프 어스》, 즉 '반쪽 지구'였다.
지금 인류는 지구 육지 면적의 약 15%만 보호구역으로 유지하고 있다.
윌슨은 그게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생물 종이 대규모로 멸종하는 걸 막으려면 적어도 절반은 있어야 한다고, 수십 년의 생태학 연구를 근거로 주장했다.
현실적이냐고?
윌슨은 그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이렇게 답했다.
"지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내일의 표준이 됩니다."
개미를 들여다보다가 인간 본성을 건드렸고,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자신의 이론을 직접 부수고 다시 세웠던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요청한 건 결국 하나였다.
우리가 지금 가진 세계의 절반쯤은 남겨달라고.
그 요청에 우리가 어떻게 답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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