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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네카는 "돈을 경멸하라"고 가르쳤지만, 로마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억만장자 철학 교수가 SNS에서 "욕심을 버려라"를 올리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실제 계좌에는 수백억이 들어 있는 거죠. 세네카가 정확히 그 상황이었어요.
스토아 철학은 한마디로 이런 가르침이에요. "외부의 것에 흔들리지 마라. 돈, 명예, 쾌락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르침을 가장 설득력 있게 쓴 사람이 세네카인데, 그의 재산은 로마 제국에서도 10위 안에 들었어요. 그는 부유한 속주민들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일도 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철학책을 팔면서 동시에 사채업을 하는 셈이에요.
비판이 쏟아졌을 때, 세네카는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는 『행복한 삶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나는 아직 현자가 아니야. 그리고 아마 되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완벽한 현자가 되라는 걸 요구하지 마." 이 솔직함이 오히려 그를 더 오래 살아남게 했어요.

세계사에서 가장 불운한 가정교사를 꼽으라면 세네카가 상위권이에요. 그가 가르친 제자가 바로 네로였거든요.
세네카는 네로가 황제가 되기 전부터 그의 스승이었어요. 네로가 황제 자리에 오른 뒤 처음 5년간은 실제로 로마가 잘 굴러갔어요.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네로의 5년"이라고 불러요. 사실상 세네카와 군사령관 부루스가 뒤에서 제국을 운영했거든요.
하지만 네로는 변했어요. 자기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직접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세네카는 그 장면 바로 다음에 연설문을 써줬어요. 어머니 살해를 정당화하는 연설문을요. 그가 그 연설문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그는 썼어요. 결국 그 연설문은 역사에 세네카의 이름으로 남았어요.

세네카의 글 중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그가 가장 비참했던 시절에 나왔어요.
기원후 41년,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세네카를 코르시카 섬으로 유배 보냈어요. 지중해의 작은 섬, 지금도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문명과 단절된 변방이었어요. 죄목은 황실 인물과의 불륜이었는데, 정치적 음모의 희생양이었다는 게 정설이에요.
그는 거기서 8년을 보냈어요. 로마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바로 그 기간에 어머니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 『헬비아에게』를 썼고, 철학적 에세이들을 완성했어요. 권력도, 재산도, 독자도 없는 곳에서요. 그가 쓴 것들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혀요.
유배가 끝나고 로마로 돌아왔을 때, 세네카는 이미 달라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 달라진 세네카가 네로의 스승이 됐어요.

세네카의 죽음은 철학책처럼 끝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인간적으로, 너무 오래 걸렸어요.
기원후 65년, 피소의 음모가 발각됐어요. 이건 네로를 황제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한 귀족들의 쿠데타 시도예요. 세네카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지만, 네로는 그에게 자결을 명령했어요. 스토아 철학자에게 자결 명령은 사실 어울리는 죽음이에요. 스토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핵심으로 삼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죽음은 너무 오래 걸렸어요. 손목을 그었지만 피가 잘 나오지 않았어요. 이미 노인이었고 오랜 병을 앓아 혈관이 가늘었거든요. 독약 헴록도 마셨지만 그것도 느렸어요.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해요. 세네카는 피를 흘리면서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했어요. 받아 적으라고요.
결국 그는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고서야 숨을 거뒀어요. 아내 파울리나는 함께 죽으려 했지만 황제의 병사들이 막았어요.
죽음을 그토록 많이 써온 사람이 막상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그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 그게 철학의 실패인지, 아니면 가장 솔직한 고백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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