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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바수반두는 자기가 믿지 않는 학파의 교과서를 썼어요.
4~5세기 인도 불교계에서 그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속해 있었어요.
설일체유부는 쉽게 말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물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불교 학파예요.
그 학파의 교리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구사론(俱舍論)』이에요.
총 8장, 수천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저작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한 사람이 혼자서 의대 교과서 전체를 집필한 것과 비슷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요.
바수반두는 교과서를 쓰면서 동시에 그 내용을 비판하는 주석을 직접 달았어요.
"이 학파는 이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자기가 쓰는 책을 자기가 반박한 거예요.
바수반두를 바꾼 건 철학 논쟁이 아니라 형의 연극이었어요.
그의 형 아상가(無著, 무착)는 대승불교의 거장이었어요.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이 목표"라는 불교의 한 흐름이에요.
아상가는 동생이 천재라는 걸 알면서도, 그 천재가 대승불교를 공개 비판하고 다니는 걸 두고만 봤어요.
바수반두는 대승 경전을 두고 "이건 부처님이 진짜로 한 말이 아니다"라고 다녔거든요.
아상가는 묘안을 냈어요.
자신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동생에게 보낸 거예요.
형이 죽어간다는 말에 바수반두가 달려왔어요.
막상 병상에 누운 형은 그에게 대승 경전을 읽어달라고 했어요.
바수반두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대승 경전을 제대로 들었어요.
그리고 그게 전부였어요.
그 자리에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전향한 직후 바수반두가 한 첫 번째 말은 참회였어요.
"내 혀를 잘라버려야겠다. 그동안 대승을 비방하는 말을 너무 많이 했으니까."
이 말이 역사 기록에 실제로 남아 있어요.
아상가는 말했어요.
"잘라내지 말고 써라. 네가 대승을 공격하던 그 혀로, 이제 대승을 설명해라."
형의 말을 들은 바수반두는 붓을 들었어요.
유식철학(唯識哲學)이 탄생한 순간이에요.
유식이란 "오직 식(識)만 있다"는 뜻으로,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외부 세계가 아니라 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철학이에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세계는 꿈속에서 꿈인 줄 모르고 있는 것과 같고,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바수반두는 이전에 비판하던 바로 그 사상을 체계화하기 시작했어요.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 그 결과예요.
비판자가 옹호자가 된 거예요.
바수반두가 전향 전에 쓴 『구사론』은 지금도 티베트 불교 승려들의 필수 교과서예요.
티베트 불교 최고 학위인 겐세(格西) 과정을 밟으려면 이 책을 통째로 외워야 해요.
버리려 했던 책이 1600년 뒤에도 시험 범위인 거예요.
그의 유식 저작들은 동아시아 불교를 통째로 바꿨어요.
7세기 승려 현장(玄奘)이 인도까지 직접 걸어가서 유식 관련 경전을 가져왔어요.
현장은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의 실제 모델이에요.
현장이 가져온 문헌 덕분에 한국과 중국, 일본에 법상종(法相宗)이 세워졌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에요.
자기 신념을 버리고 전향한 사람이, 버리기 전에 쓴 책으로도, 버린 후에 쓴 책으로도, 둘 다 1600년을 살아남은 거니까요.
바수반두는 틀린 게 아니었을지 몰라요.
그저 더 넓은 질문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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