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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소피아가 수학을 처음 배운 곳은 학교도, 도서관도 아니었다. 그녀의 침실 벽이었다.
1860년대 러시아, 아버지 코르빈-크루콥스키 장군은 집을 새로 꾸미다가 벽지가 모자란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창고에 있던 인쇄물을 벽에 발랐다. 마침 그게 수학자 오스트로그라드스키의 미적분 강의 노트였다.
어린 소피아는 그 벽 앞에서 매일 잠들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기호들이 눈에 익어갔다. 수식의 패턴이 퍼즐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소피아는 처음으로 정식 미적분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이 극한의 개념을 설명하자, 그녀는 "아, 그게 그거였구나" 하고 바로 이해했다.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이미 벽에서 다 본 내용이었으니까.
당시 러시아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의 서명 없이는 여권을 받을 수 없었다.
유럽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나라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소피아가 택한 방법은 결혼이었다. 단, 사랑이 아닌 서류를 위한 결혼.
1868년, 그녀는 고생물학자 블라디미르 코발레프스키와 계약 결혼을 맺었다.
두 사람 모두 동의한 거래였다. 그는 그녀에게 법적 자유를 주고, 그녀는 그에게 유럽 학술 네트워크를 열어주는 교환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취업 비자를 받으려고 서류상 스폰서를 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지 그 스폰서가 남편이어야 했을 뿐.
소피아는 그렇게 스물 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강의실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 중 한 명이었다.
베를린 대학교 교수였던 그는 여성을 강의실에 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피아가 찾아와 가르쳐달라고 하자, 그는 그녀를 돌려보내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냈다.
일주일 안에 풀면 가르쳐주겠다는, 사실상 포기하라는 메시지였다.
소피아는 일주일 만에 풀어 왔다. 그것도 그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이어슈트라스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대학이 여성을 받지 않으니, 개인 교습을 하기로.
그는 4년 동안 매주 소피아를 개인적으로 가르쳤다.
강의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지식은 그 문을 통과했다.
1874년, 소피아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심사를 통과하자, 바이어슈트라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여성은 내가 가르친 학생 중 가장 뛰어난 사람입니다."
박사 학위를 손에 쥔 소피아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당연히 대학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러시아 대학은 여성 교수를 뽑지 않았다.
유럽 최고 수학자에게 4년 동안 인정받은 사람이, 고등학교 수학 교사 자리조차 구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84년,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왔다.
정교수 자리였다. 유럽 최초의 여성 수학 정교수가 되는 자리.
소피아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러시아어도 독일어도 아닌, 스웨덴어로 강의를 시작했다.
1888년에는 강체의 회전 운동을 분석한 논문으로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보르댕 상을 받았다.
보르댕 상은 수학 분야 최고 권위의 상 중 하나였는데, 심사위원들이 그 논문의 수준에 놀라 상금을 두 배로 올렸다.
그녀는 1891년, 마흔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벽지 대신 수식이 도배된 방에서 잠들었던 소녀가, 유럽 전체에서 처음으로 수학과 정교수 자리에 앉기까지 걸린 시간.
그 사이에는 계약 결혼과 몰래 가르쳐준 교수와 그녀를 거부한 조국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그녀를 기억한다는 건, 그 벽들이 결국 그녀를 막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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