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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루이 파스퇴르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화학자였다. 포도주통 옆에 서서 왜 어떤 통은 식초가 되고 어떤 통은 와인이 되는지 관찰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포도주통에서 인류 역사를 바꿀 단서가 나왔다.
1850년대, 파스퇴르는 발효 현상을 들여다보다가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썩는 게 아니라 먹히는 거다."
그때까지 과학계는 부패나 발효가 그냥 저절로 일어난다고 믿었다. 오늘날로 치면 "인터넷은 그냥 연결되는 거야"라고 믿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파스퇴르는 포도주 안에서 작은 생명체들이 실제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발견이 세균 이론의 시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이론. 당시에는 의사들도 믿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포도주통 앞에 선 화학자가 의학을 뒤집어놓은 거다.

1868년, 파스퇴르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46살이었다. 왼쪽 팔다리가 마비됐다. 말도 한동안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연구를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스퇴르는 회복하자마자 다시 실험실로 돌아갔다.
오히려 더 급하게 움직였다.
그 이후 그가 집중한 게 바로 광견병이었다. 미친 개에게 물리면 거의 반드시 죽는 병. 물린 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걸 당시 사람들은 손 놓고 지켜봐야 했다.
파스퇴르는 광견병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어 몸에 미리 주입하면 면역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은 토끼의 척수 조직을 건조시켜 독성을 낮추는 방법을 반복했다.
동물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개들에게 먼저 백신을 맞히고, 나중에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리게 해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파스퇴르 자신도 알고 있었다. 동물 실험과 사람은 다르다는 걸.
1885년 7월 6일,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파스퇴르 앞에 나타났다.
아홉 살 조제프 메스테르. 이틀 전 미친 개에게 열네 군데나 물렸다.
당시 의사들은 이미 포기 선언을 했다. "살기 어렵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파스퇴르를 찾아온 거였다.
파스퇴르는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그의 일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면?"
그는 의사가 아니었다. 인간에게 이 백신을 써본 적이 없었다.
의료 면허도 없었다.
결국 파스퇴르는 결정을 내렸다.
동료 의사 두 명에게 주사를 맡기고,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
13일 동안 열세 번의 주사. 백신의 농도를 점점 높여가면서.
조제프는 살았다.
파스퇴르는 그날을 두고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2주였어요."
세계가 그를 영웅으로 불렀고, 파스퇴르 연구소가 세워졌다.

파스퇴르가 죽을 때, 그는 가족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내 실험 노트는 공개하지 말아라."
그 노트들은 거의 100년 동안 잠겨 있었다.
1995년, 프린스턴 대학의 역사학자 제럴드 가이슨이 마침내 노트를 열어 분석할 수 있었다.
거기서 나온 사실들은 파스퇴르의 공식 이야기와 달랐다.
조제프 메스테르 이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실험적으로 백신을 썼다는 기록이 있었다.
파스퇴르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실험 방식과 실제로 자신이 한 방법도 달랐다.
이것이 나쁜 걸까?
파스퇴르가 살던 시대에는 임상시험의 윤리 기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규칙을 어겼지만, 그 기준 자체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조제프 메스테르는 살아서 어른이 됐고, 나중에 파스퇴르 연구소의 수위가 됐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파스퇴르 연구소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파스퇴르의 무덤을 열라고 요구했다.
메스테르는 거절했다.
노트가 감춘 것과, 노트가 절대 담을 수 없었던 것 사이의 어딘가에 파스퇴르의 진짜 이야기가 있다.
그 아홉 살 아이가 85살 노인이 되어 무덤 앞에서 버텼다는 사실, 그것만은 기록 바깥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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