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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상의 모든 물리 문제를 암산으로 풀어내던 엔리코 페르미는 동료들 사이에서 '물리학의 교황'이라 불렸습니다.
교황의 판결이 틀릴 수 없듯, 페르미가 내놓은 답은 언제나 정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도 인생에서 딱 한 번, 인류 역사를 바꿀 뻔한 거대한 발견을 눈앞에서 놓치고 맙니다.
1934년 로마에서 페르미는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아 보내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성자는 전기를 띠지 않아 원자핵이라는 성벽을 쉽게 뚫고 들어가는 아주 작은 총알 같은 입자입니다.
그는 우라늄이라는 무거운 원소에 이 총알을 쏘면 더 무거운 '초우라늄' 원소가 만들어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실험 중 방해 신호를 막으려고 씌워둔 얇은 알루미늄 호일 한 장이 문제였습니다.
그 호일은 우라늄 핵이 반으로 쪼개지며 튀어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를 교묘하게 가로막아 버렸습니다.
페르미는 핵이 쪼개지는 '핵분열'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보고도, 그것이 새로운 원소인 줄로만 착각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어. 호일 때문에 거대한 걸 못 본 거야."
나중에 이 사실을 깨달은 페르미는 허탈하게 웃으며 동료들에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때 핵분열을 발견했다면,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은 미국이 아닌 파시스트 치하의 이탈리아나 독일에서 먼저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인류 최초의 원자력 발전은 화려한 연구소가 아니라 시카고 대학교의 낡은 스쿼시 경기장 지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중이었던 1942년, 페르미는 이곳에 '시카고 파일-1'이라는 거대한 검은 벽돌 더미를 쌓았습니다.
이 벽돌의 정체는 연필심 재료인 흑연과 우라늄으로,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당시 시카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발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실험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페르미의 목표는 연쇄 반응을 제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연쇄 반응이란 원자핵 하나가 깨지면서 나온 중성자가 옆의 핵을 깨뜨리고, 이것이 폭포처럼 번져나가며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현상입니다.
실험 현장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도끼를 든 과학자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반응이 통제 불능이 되면 제어봉을 매단 밧줄을 도끼로 끊어 반응을 강제로 멈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줄을 놓게. 세계가 바뀔 시간이야." 페르미의 차분한 명령과 함께 인류는 비로소 원자의 힘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실험은 현대의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폭탄의 공통 조상이 되었습니다.
페르미는 복잡한 계산기 대신 슬라이드 룰이라는 자 하나로 모든 수치를 계산하며 현장을 지휘했습니다.
실험이 성공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종이컵에 담긴 포도주로 조용히 축배를 들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가 진행되던 날, 페르미는 남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과학자들이 두꺼운 보호 안경을 쓰고 폭발의 섬광을 기다릴 때,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잘게 찢었습니다.
그는 정밀한 측정 장비보다 자신의 직관과 간단한 물리 법칙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태양보다 밝은 빛이 터져 나오고 엄청난 충격파가 관측소를 덮쳤습니다.
모두가 공포와 경외감에 얼어붙은 그 순간, 페르미는 잘게 찢은 종이 조각들을 공중에 툭 던졌습니다.
종이 조각들은 핵폭발이 만들어낸 바람에 밀려 약 2.5미터 정도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방금 폭발의 위력은 TNT 1만 톤 정도겠군."
그는 종이가 날아간 거리만을 보고 그 자리에서 폭발의 에너지를 암산해냈습니다.
몇 주 뒤, 수억 달러짜리 정밀 장비들을 동원해 분석한 최종 결과는 페르미의 암산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비즈니스와 과학계에서 추앙받는 페르미 추정의 정수입니다.
정확한 정보가 없어도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을 논리적으로 연결해 정답에 근접하는 기술입니다.
그는 "시카고에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이나 있을까?" 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제자들의 사고력을 훈련시키곤 했습니다.

어느 화창한 점심시간, 동료들과 식당으로 걸어가던 페르미는 갑자기 멈춰 서서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다들 어디 있지?(Where is everybody?)"
우주선이나 외계인에 대한 가벼운 잡담을 나누던 동료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진지한 표정에 당황했습니다.
이 짧은 질문은 훗날 페르미 역설이라 불리며 현대 천문학의 가장 큰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
우주의 나이는 너무나 오래되었고 별의 개수는 셀 수 없이 많으니, 우리보다 앞선 문명이 수만 개는 있어야 정상이라는 논리입니다.
상식적으로 우주는 외계인들로 북적여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아무런 신호도 받지 못했다는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존재한다면, 벌써 지구에 도착했거나 최소한 흔적이라도 남겼어야 해."
페르미는 외계 문명이 우주여행 기술을 가졌다면 은하계를 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주의 역사에 비해 찰나에 불과하다고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밤하늘은 너무나도 고요했고, 이 고요함은 인류에게 깊은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페르미는 우리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선물했습니다.
복잡한 수식 뒤에 숨지 말고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밤 퇴근길, 머리 위 밤하늘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정말로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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