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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4세기, 중국 사상계의 절반을 차지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책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양주(楊朱)라는 인물이다.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묵자를 들어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양주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맹자는 《맹자》에 이렇게 적었다.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쉽게 말하면, 당시 중국에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사상은 양주 아니면 묵자였다는 뜻이다. 공자의 유가조차 이 둘에게 밀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 양주의 저술은 단 한 권도 독립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를 욕한 맹자의 기록, 그를 비판한 다른 사람들의 글 속에서만 겨우 흔적이 남아 있다.
SNS 팔로워가 수백만인 인플루언서의 계정이 어느 날 통째로 삭제되고, 그를 비난한 사람들의 게시물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당대 가장 많이 읽히던 사상가가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지워졌다.

"털 한 올도 안 뽑겠다"는 말은 2400년 동안 이기주의의 대명사로 조롱받았다.
하지만 그 털 한 올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양주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털 한 올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겠다." 이 말만 떼어 놓으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처럼 들린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양주가 살던 전국시대는 수백 년간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다.
중국 전역의 군주들이 영토를 넓히기 위해 매년 수만 명의 백성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명분은 항상 같았다. "천하를 위해서."
양주의 선언은 바로 그 논리를 겨냥한 것이었다.
"천하를 위한다는 이유로 내 몸 하나를 함부로 쓸 수는 없어."
회사가 "팀을 위해서"라며 매번 야근을 강요할 때, "내 시간 1분도 당연히 쓸 수 없다"고 선을 긋는 것과 같다.
그 발언이 이기적으로 들리는 건, 희생을 당연시하는 쪽에서 프레임을 짰기 때문이다.
양주는 국가가 개인의 몸 하나도 함부로 동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2400년 전에 그 말을 한다는 건, 지금으로 치면 전쟁 동원령이 내려진 날 "징집은 위헌입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

전국시대에 가장 치열하게 대립한 두 사상이 있었다.
그런데 싸움의 시작점은 놀랍도록 같았다.
묵자(墨子)는 겸애(兼愛)를 주장했다. 겸애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자는 뜻이다. 오늘날로 치면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박애주의에 가깝다.
양주는 위아(爲我)를 주장했다. 위아란 자기 자신의 보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정반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씨름한 질문은 하나였다.
"왜 평범한 사람이 군주의 야망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
묵자는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면 전쟁이 사라진다"는 쪽으로 갔다.
양주는 "애초에 누구도 타인을 위해 자기 몸을 내놓을 의무가 없다"는 쪽으로 갔다.
재난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모두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과 "일단 내가 살아야 남도 구한다"고 말하는 사람, 둘 다 같은 위기를 보고 있지만 방향이 정반대다.
맹자는 이 둘을 동시에 비판했다. "묵자의 사랑에는 부모가 없고, 양주의 자아에는 임금이 없다"고 했다. 당시 유가의 기준에서는 둘 다 위험한 사상이었다. 하지만 맹자가 이 둘을 같은 무게로 다뤘다는 것 자체가, 당시 양주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세요." 요즘 어디서나 들리는 이 말을 2400년 전에 했던 사람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양주의 핵심 주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성보진(全性保眞),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지키고 참된 자신을 보전하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귀생(貴生),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
유가 중심의 사회에서 이 말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혔다.
충(忠)과 의(義)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에, "내 목숨이 가장 귀하다"고 말한 사람은 비겁자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워라밸을 말하고, 번아웃을 경계하고,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다"라고 서로 위로한다.
심리 상담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친다.
역사에서 가장 철저히 패배한 사상이 현대인의 일상 언어 속에 부활해 있다.
승리한 것은 유가의 이름이었지, 그 내용이 아니었다.
양주는 지워졌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자기 자신을 먼저 돌봐야 해"라고 말할 때, 우리는 2400년 전에 이단 취급을 받은 한 남자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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