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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살 청년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767년 지금의 시가현 지역인 오미국에서 태어난 사이초(最澄)는 19세에 히에이산(比叡山)으로 들어가 혼자 수행처를 만들었습니다.
매일 법화경을 읽고, 등불 하나를 밝혀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산림수행(籠山行)', 산을 떠나지 않고 산 속에서만 수행을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당시 일본에서 정식 승려가 되려면 나라(奈良)에 있는 거대 사찰에서 공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라는 당시 수도였고, 도다이지(東大寺) 같은 사찰들이 승려 자격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취업 허가서를 단 한 기관만이 발행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사이초는 그 시스템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갔습니다.
졸업장 대신 포트폴리오 하나 들고 산속 작업실에 들어간 사람처럼, 기득권이 정한 길을 거부하고 혼자 길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804년, 두 명의 승려가 같은 배에 올랐습니다.
한 사람은 훗날 천태종을, 다른 한 사람은 진언종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둘은 다시는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사이초와 구카이(空海)는 견당사(遣唐使)의 배를 함께 타고 당나라로 건너갔습니다.
견당사는 당시 일본이 당나라로 보내던 외교·유학 사절단으로, 최고의 학문과 문물을 일본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했습니다.
같은 배, 같은 목적지, 같은 시대를 공유한 두 사람이었습니다.
귀국 후 둘은 경전을 빌려주고 제자를 교환하며 밀접하게 교류했습니다.
그런데 사이초의 제자 타이한(泰範)이 구카이 쪽으로 넘어가면서 관계가 흔들렸습니다.
구카이는 결국 편지를 보냈습니다.
"더 이상 경전을 빌려줄 수 없다."
같은 학교 동기로 함께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 각자 회사를 창업했는데, 핵심 인재가 상대 회사로 이직하면서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상황입니다.
그 한 통의 편지가 일본 불교 역사의 물줄기를 두 갈래로 갈랐습니다.

사이초가 평생 싸운 건 딱 하나였습니다.
"우리 산에서도 승려를 만들 수 있게 해달라."
허가는 그가 눈을 감고 7일 뒤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승려가 되려면 수계(受戒)라는 의식을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수계란 불교의 계율을 받아들이는 의식으로, 이것을 통과해야 정식 승려로 인정받았습니다.
문제는 이 수계를 나라의 지정 사찰에서만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이초는 히에이산에 독자적인 대승계단(大乘戒壇)을 세워달라고 조정에 반복해서 청원했습니다.
대승계단이란 대승불교의 계율에 따라 스스로 승려를 공인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나라의 불교계는 격렬하게 반대했고, 논쟁은 수년간 이어졌습니다.
822년, 사이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7일 뒤, 조정에서 대승계단 설립을 허가하는 문서가 내려왔습니다.
수년간 싸운 소송에서 이겼다는 판결문이 도착했는데, 원고가 일주일 전에 숨을 거둔 상황이었습니다.
딱 일주일만 더 살았더라면.

히에이산 꼭대기에는 1,200년 동안 꺼지지 않은 등불이 있습니다.
그 불을 켠 사람은 자신의 승리를 단 하루도 보지 못했습니다.
사이초가 엔랴쿠지(延暦寺)에 밝힌 이 등불은 '불멸의 법등(不滅の法灯)'이라 불립니다.
전쟁과 화재가 있었던 시절에도, 태풍이 산을 휩쓸었던 밤에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1,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습니다.
사이초가 남긴 말이 있습니다.
"일우를 비추라(一隅を照らす)."
자기가 선 자리를 밝히는 사람이 나라의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산이 남긴 유산입니다.
사이초가 만든 엔랴쿠지에서 훗날 호넨(法然), 신란(親鸞), 도겐(道元), 닛치렌(日蓮)이 수행했습니다.
이 네 사람은 각각 일본 정토종, 정토진종, 조동종, 일련종의 창시자들입니다.
일본 불교의 주요 종파가 거의 모두 이 한 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살아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이 만든 작은 산사가, 한 나라의 정신 지형을 바꿔놓았습니다.
그 등불은 지금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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