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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누바바(अनुभव)는 남에게 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겪어서 아는 체험이에요. 라다크리슈난은 종교의 진리도 경전이나 논리로 증명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겪어 확인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참이 된다고 봤어요.

설탕이 달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누군가 "설탕은 달아요"라고 말해줘서 아는 것과, 내 혀에 직접 올려 단맛을 느껴서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앎이에요.
산스크리트어 아누바바(anubhava, अनुभव)는 바로 뒤쪽, 내가 몸소 겪어서 아는 체험을 가리켜요.
라다크리슈난(1888년부터 1975년까지)은 인도 철학을 서양에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인도 제2대 대통령까지 지낸 학자예요.
그는 종교와 진리의 참된 뿌리를 바로 이 아누바바, 곧 직접 겪은 체험에 두었어요.
경전에 적혀 있어서도 아니고 논리로 증명돼서도 아니라, 스스로 겪어 확인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진리가 된다는 거죠.

라다크리슈난은 학생 시절 기독교 학교에서 힌두교가 무시당하는 걸 겪었어요.
그는 이렇게 회고했죠.
"기독교 비평가들의 도전은 나로 하여금 힌두교를 연구하여 그 안에서 무엇이 살아있고 무엇이 죽었는지 찾아보게 만들었다."
이 고민 끝에 그가 붙든 '살아 있는 것'이 바로 직접 체험, 아누바바였어요.
왜였을까요?
그는 종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밖에서 주어진 권위가 아니라고 봤어요.
"숭배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하는 권위이다"라고 꼬집었죠.
남이 "이게 진리다"라고 정해주는 말만 따르면, 진리는 어느새 명령을 따르는 일로 쪼그라들어요.
그래서 그는 각자가 직접 겪어 확인하는 체험을 앞세운 거예요.
실제로 그는 종교를 직관적 체험의 깊이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누기도 했어요.
절대자를 직접 마주하는 체험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잡다한 힘이나 영을 섬기는 단계를 아래에 두는 식이었죠.
체험이 얼마나 깊고 곧은지가 기준이었던 셈이에요.

'안다'는 말은 두 가지로 나뉘어요.
책이나 설명으로 머리에 담은 지식과, 직접 부딪혀 몸으로 아는 아누바바는 결이 달라요.
| 들어서 아는 지식 | 겪어서 아는 아누바바 |
|---|---|
| 남의 말·경전·논리로 전달됨 | 내가 직접 겪어야 생김 |
| 말로 또박또박 옮길 수 있음 | 말로는 끝내 다 옮기기 어려움 |
| 잊거나 바뀔 수 있음 | 한번 겪으면 확신으로 남음 |
왜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울까요?
매운맛을 한 번도 못 본 사람에게 '맵다'를 아무리 설명해도 눈물 쏙 빠지는 그 느낌은 전해지지 않아요.
체험은 말의 그물로 다 건져지지 않고, 늘 조금은 직접 겪은 사람의 몫으로 남죠.
수영 책을 백 권 읽어도 물에 못 뜨지만, 한 번 몸으로 뜨는 감을 익히면 평생 잊지 않는 것과 같아요.
라다크리슈난이 말한 아누바바도 이런 거예요.
그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브라만(梵)이라 불렀고, 사람의 본성 깊은 곳이 이 브라만과 같은 정신성으로 이어져 있다고 봤어요.
그 이어짐을 머리로 외우는 게 아니라 직접 느껴 아는 것, 그게 아누바바가 겨냥한 자리예요.

아누바바는 옛 인도 이야기로만 남지 않아요.
라다크리슈난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배우기를 멈춘다"고 했어요.
다 안다고 자만하면 새로 겪을 마음의 문이 닫힌다는 뜻이죠.
우리 공부도 비슷해요.
정의를 달달 외운 것과 실제로 풀어보며 깨친 것은 남는 깊이가 달라요.
우정도, 슬픔도, 용기도 설명만으론 절반밖에 못 전해요.
직접 겪어봐야 "아, 이거였구나" 하고 온몸으로 알게 되죠.
아누바바는 바로 그 '겪어야 진짜 안다'는 오래된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다만 한 가지 짚어둘 게 있어요.
학자들 중에는 라다크리슈난이 체험을 '가장 보편적인 종교의 핵심'으로 내세운 방식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운 해석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니 그의 말을 통째로 정답 삼기보다, 겪어 아는 앎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관점으로 새기는 게 좋아요.

아누바바(anubhava, अनुभव)는 남에게 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겪어서 아는 체험이에요.
라다크리슈난은 종교와 진리의 살아 있는 뿌리를 이 체험에 두었고, 밖에서 주어진 권위보다 스스로 겪어 확인하는 앎을 앞세웠어요.
설탕의 단맛도 수영도, 결국 겪어봐야 아는 법이죠.
오늘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게 들어서 아는 것인지 겪어서 아는 것인지 한 번 되물어 보면, 아누바바가 무슨 말인지 몸으로 다가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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