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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북벌론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기 위해 청나라를 실제로 쳐들어가자는 주장이에요. 윤휴는 숙종에게 '십만 정병과 군량이면 열흘 안에 심양을 차지할 수 있다'며 북벌을 올렸지만, 임금도 대신들도 위험한 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북벌(北伐)은 말 그대로 '북쪽을 친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북쪽은 청나라를 가리켜요.
1636년 병자호란 때 조선은 청에게 크게 졌고, 인조 임금이 성 밖으로 나가 무릎 꿇고 항복했어요.
조선 사람들에게는 이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죠.
윤휴(1617~1680)는 주자 해석에 도전했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린 학자인데, 이 치욕을 언젠가 갚아야 한다고 믿었어요.
원수를 갚고 부끄러움을 씻자는 이 생각을 한자로 복수설치(復讐雪恥)라고 해요.
운동장에서 크게 넘어져 창피를 당한 아이가 '언젠가 꼭 되갚겠다'며 이를 악무는 마음, 그걸 나라 차원으로 키운 것이 북벌론이에요.
1674년 12월, 숙종이 막 임금이 되었을 때 윤휴는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의 치욕을 언급하며 북벌 상소와 밀봉 책자를 올렸어요.
그는 앞선 임금 효종을 이렇게 떠올려요.
효종대왕은 왕위에 오른 뒤 10년 동안 자나깨나 군사를 다스리고 뜻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하루도 북쪽으로 향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효종이 못다 이룬 북벌의 꿈을 이제 숙종이 이어받으라는 이야기였죠.
윤휴는 자신감도 넘쳤어요.
청 사신 문제로 영의정 허적에게 한 말이 이래요.
우리나라에는 십만의 정병이 있고 황해도, 평안도에서 군량미를 공급할 수 있으니 열흘이 못 돼 심양을 차지할 수 있소.
하지만 숙종은 '윤휴의 상소는 화(禍)를 부르는 말'이라고 평했고, 허적과 예조판서 권대운도 부정적이었어요.
힘센 이웃과 다시 싸우자는 말이 임금 귀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소리로 들린 거예요.
윤휴의 북벌은 그냥 '쳐들어가자'는 구호가 아니었어요.
전쟁을 하려면 군대와 돈,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는 나라 전체를 싸울 수 있는 몸으로 바꾸는 개혁안을 함께 내놓았어요.
| 윤휴의 건의 | 무엇을 하자는 것 |
|---|---|
| 호포법(戶布法)·국민개병제 | 양반에게도 병역과 군포를 부과해 병력을 늘리자 |
| 오위제 복구 | 옛 다섯 부대 체제를 되살려 군대를 다시 세우자 |
| 만인과(萬人科) 설치 | 만 명 규모의 특별 시험으로 인재를 대거 뽑자 |
| 도체찰사부(都體察使府) 설립 | 전쟁을 총괄 지휘하는 사령부를 두자 |
| 전차·화차 제조 | 수레형 무기를 만들어 전력을 키우자 |
특히 호포법은 세금과 병역을 지지 않던 양반에게도 부담을 지우자는 것이라, 당시로선 무척 대담했어요.
그런데 같은 편인 남인 대신들조차 이런 개혁을 반기지 않았어요.
그가 건의한 지패법(신분에 따라 나뉜 호패를 모두 종이로 통일하자는 안)도 허적·권대운·허목이 함께 반대해 무산됐죠.
북벌을 위한 개혁이 오히려 그를 외롭게 만든 셈이에요.
여기서 학자들의 해석이 갈려요.
후대 사학자 이이화는 윤휴의 북벌론이 송시열의 북벌론과 명분·논리가 너무 닮았다는 점을 들어, 실제 청을 정벌할 뜻보다는 명나라를 높이고 청을 배척하는 명분으로 체제를 지키려는 '위장 논리'였을 수 있다고 봤어요.
겉으로는 복수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정치적 힘을 얻으려는 수단이었을 수 있다는 거죠.
반대로 숙종이 삼번의 난이 진압된 뒤 청의 의심을 피하려고 북벌을 외치던 윤휴를 일부러 희생시켰다는 '사사 공작설'도 있어요.
실제로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밀려나자, 윤휴가 세우자던 도체찰사부는 반란을 꾸민 증거처럼 추궁당했어요.
그는 끝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유배 가던 길에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어요.
북벌을 부르짖던 목소리가 정치 싸움 속에서 도리어 그의 목을 겨눈 칼이 된 거예요.
윤휴의 북벌론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자는 복수설치의 외침이자, 그걸 이루기 위해 양반에게도 병역을 지우고 군대와 사령부를 새로 세우자는 개혁안이었어요.
하지만 임금도 대신들도 위험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그가 만들자던 사령부가 반역의 빌미로 몰려 그는 사약을 받았죠.
북벌이 진심이었는지 정치적 명분이었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갈리지만, 한 학자의 꿈이 시대의 두려움과 권력 다툼 앞에서 어떻게 꺾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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