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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심리론(心理論)은 사람의 마음(心)과 그 마음에 담긴 이치(理), 그리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따지는 성리학의 한 갈래예요. 윤휴는 이 마음의 이치를 주자(朱子)가 정해 준 풀이대로만 외우지 않고, 스스로 오래 사색해서 다시 읽으려 했어요.
먼저 이름부터 정리해요.
심리론은 오늘 우리가 아는 '심리학(psychology)'이 아니에요.
심리학은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과학으로 살피는 학문이고, 심리론의 '심리(心理)'는 마음 심(心)에 이치 리(理), 그러니까 '마음에 깃든 이치'를 뜻해요.
조선의 학자들이 붓으로 따지던 옛 공부지요.
비유하자면 마음속 지도를 그리는 일이에요.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흔들려요.
넘어진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하고,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욕심이 올라오지요.
성리학자들은 물었어요.
"이 마음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착한 마음과 흔들리는 마음은 뿌리가 같을까, 다를까?"
이걸 평생 파고든 게 심리론이에요.
윤휴(1617년~1680년)도 이 문제를 붙들고 《사단칠정인심도심설(四端七情人心道心說)》이라는 글을 남겼어요.
제목 자체가 이 글에서 다룰 주제를 그대로 담고 있어요.
심리론에서 가장 크게 다투던 두 짝이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이에요.
말이 어렵지만, 결국 '마음의 종류를 나눠 보기'예요.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용어 | 한자 | 쉬운 설명 |
|---|---|---|
| 사단(四端) | 네 가지 실마리 | 남을 딱하게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착한 마음의 싹 |
| 칠정(七情) | 일곱 가지 감정 | 기쁨·노여움·슬픔·두려움·사랑·미움·욕심 같은 보통의 감정 |
| 인심(人心) | 사람의 마음 | 배고프고 춥고 아픈, 몸에서 올라오는 마음 |
| 도심(道心) | 도리의 마음 | 옳은 길을 따르려는 반듯한 마음 |
예를 들어 볼게요.
길에서 넘어진 친구를 보고 '아이고' 하는 마음은 착한 실마리, 곧 사단에 가까워요.
그런데 '나도 저기 걸려 넘어질 뻔했네, 짜증 나' 하는 마음은 칠정이지요.
또 시험 전날 '자고 싶다'는 마음은 인심, '그래도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은 도심이에요.
심리론은 이렇게 한 사람 안에서 뒤엉키는 마음들을 갈라 보고, 무엇이 무엇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따진 공부예요.
여기서 윤휴의 색깔이 나와요.
당시 조선 학자들에게 이 마음 문제의 '정답지'는 사실상 정해져 있었어요.
송나라 학자 주자의 풀이였지요.
대부분은 그 풀이를 외우고 그대로 따랐어요.
윤휴는 조금 달랐어요.
그는 주자를 미워하거나 통째로 부정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주자를 학문의 길을 크게 열어 준 큰 공로자로 높이 평가했어요.
다만 '오직 주자만이 옛 경전의 뜻을 다 알아냈다'는 태도, 즉 주자만 유일한 정답이라는 생각에는 고개를 저었어요.
마음의 이치라면 나도 스스로 읽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그 바탕에는 '사색'이 있었어요.
윤휴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져요.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사색한 것은 글로 기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색하고 기록하고 해석하다 보면 깨닫고 알게 되어 언행이 두루 통하게 된다."
남이 정해 준 답을 받아 적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적고 또 풀어 보는 과정에서 마음의 이치를 붙잡으려 한 태도지요.
다만 그가 마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눴는지, 그 세세한 결론은 그가 직접 쓴 책 속에 담겨 있어요.
지금 보면 '스스로 생각해 본다'는 건 당연하고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그 시대엔 이게 큰일이 될 수 있었어요.
정해진 풀이를 벗어나 마음의 이치를 다시 읽으려는 태도 자체가, 반대편에게는 '질서를 흔드는 행동'으로 보였거든요.
실제로 송시열의 수제자 권상하의 일화가 이걸 잘 보여줘요.
'윤휴의 가장 큰 죄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한 제자가 반역죄라고 답하자, 권상하는 공부가 얕다고 꾸짖으며 말했대요.
가장 큰 죄는 주자를 모욕한 것이라고요.
마음을 스스로 읽으려 한 일이, 정치 싸움과 얽히면서 '사문난적(斯文亂賊)', 곧 유학을 어지럽힌 죄인이라는 낙인으로 번진 거예요.
그러니 윤휴의 심리론은 단순한 학문 다툼이 아니라, 생각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락되는가를 건 위험한 시도이기도 했어요.
윤휴의 심리론은 세 가지로 기억하면 좋아요.
첫째, 심리론은 마음(心)과 그 이치(理), 그리고 사단칠정·인심도심 같은 마음의 종류를 따지는 성리학 공부이고, 오늘의 심리학과는 달라요.
둘째, 윤휴는 주자를 존경하면서도 '주자만 정답'이라는 태도를 거부하고, 스스로 사색해서 마음의 이치를 다시 읽으려 했어요.
셋째, 그 자율적인 태도는 정치 싸움과 얽혀 사문난적이라는 무거운 낙인으로 돌아왔지요.
마음을 남의 답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들여다보려 한 사람, 그게 심리론에서 만나는 윤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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