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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기이원론은 세상 모든 것이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이치'인 이(理·리)와 '그 이치를 실제로 채우는 재료이자 기운'인 기(気·기), 이 둘이 짝을 이뤄 생겨난다고 보는 생각이에요. 이치만 있으면 텅 비고 재료만 있으면 뒤죽박죽이라, 둘 다 있어야 비로소 진짜 사물이 됩니다.
붕어빵을 떠올려 볼까요.
붕어빵이 붕어 모양인 건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틀이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건 밀가루 반죽이라는 재료가 그 틀을 채웠기 때문이에요.
틀만 있고 반죽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나오고, 반죽만 있고 틀이 없으면 그냥 흐물흐물한 뭉텅이죠.
이기이원론(理気二元論)은 세상 모든 것을 딱 이렇게 봐요.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이치'인 이(理·리)와, '그 이치를 실제로 채우는 재료이자 기운'인 기(気·기), 이 둘이 짝을 이뤄야 비로소 하나의 사물이 된다는 거예요.
이 생각의 원조는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주희(朱熹), 곧 주자예요.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년부터 1657년까지)은 에도 막부 초기의 유학자로, 이 주자의 학문을 일본에 들여와 막부의 공식 학문으로 세운 사람이고요.
그가 다룬 여러 사상의 바탕에 바로 이 '이와 기, 두 가지로 세상을 읽는 틀'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기이원론을 알면 그의 생각 전체가 어떤 지도 위에 그려졌는지 한눈에 보이는 셈이에요.
이(理)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이치', 불이 뜨거운 '이치'처럼, 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칙이자 꼴이에요.
반면 기(気)는 실제로 흐르는 물, 실제로 타오르는 불처럼 눈에 보이고 움직이고 뭉치고 흩어지는 재료이자 기운이고요.
하나는 '무엇이 될지 정하는 설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설계를 실제 물건으로 만들어 내는 살과 기운'인 셈이죠.
| 구분 | 이(理) | 기(気) |
|---|---|---|
| 정체 | 사물의 이치·법칙·꼴 | 사물을 이루는 재료·기운 |
| 성질 | 보이지 않고 변하지 않음 | 보이고 움직이며 뭉치고 흩어짐 |
| 붕어빵 비유 | 붕어 모양이라는 틀 | 틀을 채우는 밀가루 반죽 |
| 하는 일 | 무엇이 될지 정함 | 실제로 그것이 되게 함 |
중요한 건 둘 중 하나만 있어선 아무것도 안 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두 가지가 근본이 된다'는 뜻으로 이원론(二元論)이라고 불러요.
붕어빵 틀과 반죽처럼, 이와 기는 늘 함께 붙어 다니며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이 틀이 왜 편리하냐면, 세상의 '질서'와 '다양함'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모든 게 제멋대로라면 물이 어떤 날은 위로 흐르고 어떤 날은 아래로 흘러야 하는데, 실제로는 늘 아래로 흐르죠.
이렇게 세상이 어긋나지 않고 굴러가는 건 사물마다 지켜야 할 이(理)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 거예요.
그런데 사람도 나무도 돌도 저마다 다르잖아요.
그 다름은 어디서 올까요.
바로 기(気)에서 온다고 봤어요.
같은 이치를 받았어도 그것을 채운 기운이 맑거나 탁하고, 두껍거나 얇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모습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세상은 왜 이렇게 질서정연하면서도 이렇게 다양할까'라는 큰 물음에, 이기이원론은 '이치는 하나로 통하고, 재료는 제각각이라 그렇다'고 답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이 있어요.
라잔은 주자학을 일본에 뿌리내린 사람이면서도, 중국 쪽 기록을 보면 주희의 '이기론(理氣論)' 자체에는 반대하는 면이 있었다고 전해져요.
대신 주희가 불교를 배척한 논리, 곧 배불반석(排佛反釋)은 적극적으로 가져다 당시 힘이 셌던 불교 세력을 비판하는 데 썼다고 하고요.
그는 젊은 시절 겐닌지에서 승려들이 출가를 권하자 "身体发肤不可毁伤,孝也"(신체와 머리카락, 살갗은 함부로 훼손할 수 없으니 이것이 효다)라며 거절하고 유학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죠.
그래서 이기이원론은 라잔에게 '무조건 받든 정답'이라기보다, 그가 딛고 서서 씨름한 배경 틀에 가까워요.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엔 거리를 두면서 자기 생각을 세운 거죠.
자료가 남긴 만큼만 조심스럽게 말하면, 라잔에게 이와 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언어였지만 그 세부까지 주희와 똑같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와 기를 나눠 보는 눈은 지금도 쓸모가 있어요.
요리에서 '레시피'와 '재료'를 나누고, 컴퓨터에서 '프로그램'과 '부품'을 나누고, 건물에서 '설계도'와 '벽돌'을 나누는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이니까요.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을 때 '이건 어떤 이치로 그렇게 되나(이)'와 '이건 무엇으로 이뤄져 어떻게 움직이나(기)'를 따로 물어보면, 헝클어진 것도 한결 또렷해집니다.
옛사람들이 세상을 이 두 글자로 정리해 보려 한 시도는, 결국 '보이지 않는 규칙'과 '보이는 실체'를 같이 잡으려는 노력이었어요.
그 오래된 질문은 지금 우리가 무언가를 뜯어볼 때도 여전히 쓸모가 있어요.
이기이원론은 세상 모든 것이 이(理)와 기(気) 두 가지가 짝을 이뤄 생긴다고 보는 생각이에요.
이는 사물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보이지 않는 이치, 기는 그 이치를 채우는 보이는 재료이자 기운입니다.
이치는 하나로 통해 세상의 질서를 설명하고, 재료는 제각각이라 세상의 다양함을 설명해요.
하야시 라잔은 이 틀을 배경으로 삼되 주희의 이기론 세부에는 거리를 두기도 한, 일본 주자학의 문을 연 유학자였고요.
'규칙과 재료를 나눠 본다'는 이 단순한 눈이 이기이원론의 핵심이라고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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