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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사람과 귀신·저승 세계의 만남을 빌려, 세조의 왕위 찬탈로 뒤집힌 세상에서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던 뜻을 담아낸 한문 소설 다섯 편이에요.
그 이야기 속에는 유교와 불교, 도교를 한자리에 아우르려는 회통(會通)의 마음이 흘러요.
김시습(1435년~1493년)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승려로, 세조에게 벼슬하기를 끝내 거부한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이에요.
그가 경주 금오산의 용장사에 머물던 시절, 대략 1460년대에 지은 이야기 묶음이 바로 《금오신화》입니다.
한자어라 어렵게 들리지만, 뜻을 풀면 '금오산에서 지은 새로운 이야기'예요.
한문으로 쓴 짧은 소설 다섯 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승려나 선비,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만나는 신비한 사건들이 담겨 있어요.
학자들은 이 책을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소설로 꼽아요.
옛날이야기 수준을 넘어, 인물의 마음을 그리고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엮었다는 점에서 '소설'이라 부를 만하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우리 문학의 '첫 소설'이 태어난 순간인 셈이죠.
여기서 궁금해져요.
나라를 걱정하던 선비가 왜 귀신 나오는 이야기를 썼을까요?
김시습이 스물한 살이던 1453년, 수양대군(세조)이 정변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았어요.
삼각산에서 책을 읽던 김시습은 이 소식을 듣고 사흘간 문을 닫고 괴로워하다, 통곡하며 읽던 책을 불사르고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됐어요.
그러고는 벼슬을 단념한 채 전국을 떠돌았어요.
권력이 정의를 짓밟은 세상에서, 하고 싶은 말을 대놓고 하기는 어려웠어요.
대신 그는 이야기라는 그릇을 택했어요.
산 사람과 죽은 넋이 만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지는 세계에서는 무슨 말이든 상상으로 펼칠 수 있으니까요.
마치 오늘날 우리가 하고 싶은 속내를 소설이나 영화의 인물 입을 빌려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금오신화의 신비한 이야기들은 그저 무서운 괴담이 아니라, 억울함과 그리움, 옳음을 향한 갈망을 담아낸 마음의 창(窓)으로 읽혀요.
금오신화 사상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섞임'이에요.
김시습은 어릴 때 《중용》과 《대학》에 통달한 유학자였고, 동시에 설잠(雪岑)이라는 법명을 가진 승려이기도 했어요.
그는 유교와 불교, 도교를 서로 배척하지 않고 하나로 아우르려 했는데, 이를 회통이라고 불러요.
세 갈래 물길이 결국 한 강으로 모인다고 보는 태도죠.
실제로 그는 유교 사당과 불교 사찰 양쪽에서 모두 추앙받았어요.
이 회통의 정신이 금오신화 안에도 스며 있어요.
선비의 유교적 절개, 승려와 귀신을 통한 불교적 상상, 자연 속에 노니는 도교적 분위기가 한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세 사상을 표로 견주면 이래요.
| 갈래 | 금오신화에 비친 모습 |
|---|---|
| 유교 | 옳음을 지키는 선비의 절개와 의리 |
| 불교 |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인연, 저승의 상상 |
| 도교 | 자연과 신선의 세계를 넘나드는 분위기 |
다만 조심할 점이 있어요.
그가 어떤 사상을 '옳다'고 논리로 못박은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세 결을 함께 녹여 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금오신화는 교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회통의 마음이 밴 문학 작품으로 읽는 편이 맞아요.
금오신화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에요.
중국 명나라 구우(瞿佑)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라는 신비한 이야기 모음집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어요.
그런데 김시습은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베끼지 않았어요.
배경과 소재를 조선 땅의 사정에 맞게 바꿔 냈어요.
남의 그릇을 빌리되 우리 재료를 담은 셈이죠.
이 점이 중요해요.
빌려온 형식 안에서도 조선 사람의 삶과 정서를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것, 그래서 금오신화는 '우리 최초의 소설'이라는 자리에 설 수 있었어요.
이 책은 훗날 일본 도쿠가와 시대에도 읽혔고, 지금은 남한과 북한 모두의 문학 정전(正典)에 나란히 올라 있어요.
금오신화의 사상은 몇 마디로 이렇게 묶을 수 있어요.
첫째, 세조의 찬탈로 옳게 말할 수 없던 세상에서 김시습은 귀신과 저승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빌려 속뜻을 담았어요.
둘째, 그 이야기 안에는 유교·불교·도교를 서로 밀어내지 않고 하나로 잇는 회통의 마음이 흘러요.
셋째, 중국 《전등신화》의 형식을 빌리되 배경을 조선으로 바꿔, 우리 문학사 최초의 소설을 세웠어요.
못다 한 말을 이야기로 옮긴 한 사람의 붓끝에서, 조선의 소설이 처음 숨을 쉬기 시작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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