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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정도전은 왕자와 공신들이 각자 거느리던 사병을 없애 나라의 군대 하나로 합치려 했어요. 요동 정벌 같은 큰 전쟁을 치르려면 흩어진 군대를 한 손에 모아야 했고, 그 한 손을 왕이 아니라 나라가 쥐게 하려던 것이 사병 혁파의 속뜻이에요.
조선 건국의 이론을 설계한 성리학 정치가 정도전, 그가 나라를 세운 뒤 가장 공들인 일 중 하나가 바로 사병(私兵) 혁파예요.
'사병'은 나라가 아니라 개인이 사사롭게 거느린 군대를 말해요.
반마다 대장이 자기 부하 몇 명을 따로 데리고 다니는 학교를 떠올려 보세요.
교장 선생님이 부르는 전체 조회는 있지만, 실제로 힘센 건 반 대장들이 각자 데리고 다니는 무리예요.
고려 말이 딱 이랬어요.
왕자들과 개국 공신들이 저마다 병사를 두고 있어서, 나라의 군대는 명목뿐이고 진짜 무력은 몇몇 힘센 사람들의 손에 나뉘어 있었죠.
정도전은 이걸 위험하게 봤어요.
그는 군국의 요직인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를 맡아, 여기저기 흩어진 사병을 거둬들여 나라의 군대 하나로 합치려 했어요.
사람마다 딴 주머니를 차지 말고, 나라 금고 하나만 두자는 이야기였죠.
같은 시기에 정도전이 밀어붙인 또 하나가 요동(遼東) 정벌이에요.
요동은 지금의 중국 동북쪽 땅으로, 명나라와 국경을 맞댄 지역이에요.
그 넓은 땅을 향해 큰 군대를 움직이려는 계획이었죠.
요동 정벌과 사병 혁파는 왜 늘 한 묶음으로 이야기될까요.
큰 전쟁을 하려면 군대가 하나로 모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반 대장들이 각자 부하를 데리고 제멋대로 움직이면 큰 시합을 이길 수 없잖아요.
온 학교가 한 감독의 신호에 맞춰 움직여야 하죠.
요동 정벌이라는 커다란 목표는, 흩어진 사병을 나라의 군대로 끌어모을 아주 좋은 명분이 되어 주었어요.
그러니까 요동 정벌은 겉으로 드러난 목표였고, 사병 혁파는 그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할 밑준비였어요.
둘은 앞뒷면처럼 붙어 있었죠.
정도전에게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졌어요.
나라의 힘은 누구의 손에 모여야 하는가.
문제는 그 사병이 바로 왕자들의 힘이었다는 데 있어요.
사병을 내놓으라는 말은, 왕자들에게 '네 무기를 다 반납해라'라는 말과 같았어요.
특히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크게 반발했어요.
뿌리에는 더 깊은 생각의 차이가 있었어요.
정도전은 왕은 상징으로 두고 실권은 재상이 쥐어야 한다는 재상 중심 정치를 그렸어요.
왕 한 사람의 사사로운 무력이 아니라, 나라의 제도가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는 뜻이죠.
반대로 이방원은 강한 왕권을 원했어요.
군대는 결국 왕의 것이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이 둘의 생각은 처음부터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어요.
| 정도전 | 이방원 |
|---|---|
| 사병을 없애 나라 군대로 통합 | 사병은 왕자의 정당한 힘 |
| 재상 중심, 제도가 군권을 쥔다 | 강한 왕권, 왕이 군권을 쥔다 |
결말은 갑작스러웠어요.
1398년 음력 8월 26일, 이방원이 자기 사병을 이끌고 남은의 첩의 집이 있던 송현을 습격해 정도전과 그 지지자들, 세자 이방석까지 죽였어요.
이 사건이 제1차 왕자의 난이에요.
사병을 없애려던 사람이 끝내 사병의 칼에 목숨을 잃은 셈이죠.
정도전의 사병 혁파는 왕자와 공신들이 각자 거느린 군대를 없애, 나라의 군대 하나로 합치려던 일이었어요.
요동 정벌은 그 통합을 이룰 명분이자 목표였고요.
두 가지 모두 결국 '나라의 힘은 누구의 손에 모여야 하는가'라는 한 질문을 향하고 있었어요.
정도전은 그 손이 왕 개인이 아니라 나라의 제도여야 한다고 봤지만, 강한 왕권을 원한 이방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1398년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사병의 칼에 쓰러지면서, 군대를 하나로 모으려던 그의 구상도 함께 멈췄어요.
사병을 없애려던 사람이 사병에게 무너진 그 마지막 장면 하나만 기억해도, 이 주제의 핵심은 손에 잡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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