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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정도전은 나라 다스리는 일이 힘이나 종교가 아니라 사람의 도덕에서 시작한다고 봤어요. 임금과 신하가 먼저 바르게 살고 그 도덕을 교육과 제도로 넓혀 백성에게 미치게 하는 것, 이것이 성리학을 조선의 통치 이념으로 세운다는 말이에요.
큰 건물을 세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튼튼한 뼈대를 세우는 거예요.
뼈대가 흔들리면 아무리 예쁘게 꾸며도 무너지고 말죠.
정도전은 새로 세울 나라 조선에도 이런 '뼈대'가 필요하다고 봤고, 그 뼈대로 성리학을 골랐어요.
성리학은 중국 남송 때 주자(주희)가 정리한 유학의 새 흐름이라 '신유학'이라고도 불러요.
핵심은 이래요.
사람의 마음속 본성에는 하늘이 준 바른 이치가 이미 들어 있어요.
그 이치를 갈고닦아 나를 바르게 만들면 그 힘이 집안으로, 나라로 퍼져 나가요.
정도전에게 정치란 바로 이 도덕을 넓혀 가는 일이었어요.
힘센 군대나 신령한 부처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도덕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라는 것, 이것이 성리학 통치 이념의 한복판이에요.
정도전(1342년~1398년)은 고려 말 학자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한 성리학자였고, 뒷날 이성계를 도와 1392년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이에요.
그가 배운 성리학의 학맥은 안향에서 백이정, 이제현으로 이어져 내려온 흐름이었죠.
그런데 왜 굳이 새 이념이 필요했을까요?
고려는 500년 가까이 불교를 정신의 기둥으로 삼은 나라였어요.
정도전이 보기에 이 기둥은 이미 낡고 흔들리고 있었죠.
새 나라를 세우려면 새 뼈대, 곧 새로운 통치의 원리가 있어야 했어요.
정도전은 그 자리에 성리학을 앉혔어요.
불교가 하던 '나라를 이끄는 정신'의 역할을 이제 사람의 도덕을 다루는 성리학이 맡게 한 거예요.
불교를 조목조목 따진 《불씨잡변(佛氏雜辨)》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예요.
성리학이 말하는 통치의 순서는 아주 단순해요.
먼저 나를 닦고, 그 다음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래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거예요.
순서가 거꾸로 되면 안 돼요.
스스로 바르지 못한 사람이 남을 다스리겠다고 나서면 아랫사람도 따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정도전의 통치 이념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임금과 신하 자신이었어요.
임금이 먼저 욕심을 누르고 바르게 살고, 신하들이 각자 맡은 자리에서 도리를 다할 때 나라가 선다고 봤죠.
정도전은 《경제문감(經濟文鑑)》(1395년경)에서 재상·감사·수령·무관 같은 여러 직책이 지켜야 할 도리와 군주가 갖춰야 할 몸가짐을 하나하나 밝혀 두었어요.
자리마다 도덕적 책임을 붙여 둔 셈이에요.
다스림이 사람의 됨됨이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제도의 언어로 옮긴 거죠.
생각만으로는 이념이 나라에 뿌리내리지 못해요.
사람을 길러야 하죠.
정도전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成均館)을 세우는 데 참여하고 초기 교수진으로도 활동했어요.
유교 경전을 배운 인재들이 관리가 되어 나라 곳곳으로 퍼지면 성리학의 도덕이 자연히 정치 전체에 스며든다고 본 거예요.
교육이 곧 통치의 씨앗이었던 셈이죠.
정도전은 사회의 모습도 성리학의 질서로 그렸어요.
그는 백성을 크게 세 층으로 나눠 보았는데, 다음 표처럼 정리할 수 있어요.
| 계층 | 어떤 사람들 |
|---|---|
| 위 | 소수의 관료 |
| 가운데 | 글 읽는 문인 |
| 아래 | 농사짓는 이·장인 등 대다수 |
그리고 이 세 층 어디에도 들지 않는 승려·무당·광대 같은 이들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여겼어요.
오늘의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차별적인 구분이지만, 성리학의 도덕 질서로 온 사회를 짜맞추려 한 그의 뜻이 뚜렷이 드러나는 대목이에요.
정도전이 세우려 한 성리학 통치 이념은 한마디로 '도덕이 정치의 근본'이라는 생각이었어요.
나를 닦는 일에서 시작해 나라 다스리는 일까지 하나로 이어지고, 임금과 신하가 먼저 바르게 살며, 교육으로 그 도덕을 사회 전체에 넓혀 가는 것, 이것이 그가 새 나라 조선에 심으려 한 뼈대였죠.
힘이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가 나라를 지탱한다는 이 믿음은 조선 왕조 500년 넘게 딛고 선 바탕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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