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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과전법은 땅 자체를 나눠 준 제도가 아니라, 그 땅에서 세금(곡식)을 걷을 권리를 관리들에게 등급대로 다시 배분한 개혁이에요. 소수 권력자에게 몰려 있던 토지의 이익을 나라가 거둬들여 새 질서로 뿌린 거죠.
조선을 세운 정도전(1342~1398, 호는 삼봉)은 성리학을 공부한 정치가예요.
그런데 그가 새 시대를 열며 제일 먼저 손댄 건 궁궐도 법전도 아니었어요.
바로 '땅'이었어요.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가 정권을 잡자 정도전은 밀직부사로 올라섰어요.
그리고 조준·남은·윤소종 같은 동료들과 함께 곧장 '전제(田制) 개혁', 즉 토지 제도를 통째로 뜯어고치는 일에 착수했어요.
새 나라의 뿌리를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 곧 땅에서 찾았기 때문이에요.
곳간이 비고 백성이 굶는 나라는 아무리 이름만 바꿔도 오래 못 간다고 본 거죠.
이 토지개혁의 결실이 바로 과전법(科田法)이에요.
이름을 한 글자씩 뜯어볼게요.
과(科)는 '등급', 전(田)은 '밭'이에요.
그러니까 관리들에게 벼슬 등급에 따라 밭을 나눠 주는 법이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오해해요.
'밭을 나눠 줬다'고 하면 땅문서를 통째로 선물한 것처럼 들리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나눠 준 건 땅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밭을 해마다 곡식이 나오는 자판기라고 상상해 보세요.
과전법이 관리에게 준 건 자판기(밭)가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곡식을 받아 갈 '쿠폰'이었어요.
이 쿠폰을 어려운 말로 수조권(收租權), 곧 '세금 걷을 권리'라고 불러요.
밭을 실제로 갈고 씨 뿌리는 사람은 그대로 농민이에요.
다만 그 농민이 수확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낼 때, 그걸 나라가 아니라 특정 관리에게 내도록 정해 준 거죠.
관리는 땅 주인이 아니라 '그 밭의 세금을 받는 사람'이었던 셈이에요.
소유권과 수조권을 헷갈리기 쉬우니 나란히 놓아 볼게요.
| 구분 | 소유권 | 수조권(과전법이 나눈 것) |
|---|---|---|
| 무엇인가 | 땅을 가진 권리 | 그 땅 세금을 걷을 권리 |
| 밭 가는 사람 | 주인 또는 농민 | 여전히 농민 |
| 관리가 받은 것 | 땅이 아님 | 곡식(세금)을 받을 쿠폰 |
그래서 과전법은 '땅 나눠 주기'가 아니라 '세금 받을 권리 다시 나누기'였다고 이해하는 게 정확해요.
왜 이걸 새로 나눠야 했을까요?
고려 말에는 이 쿠폰이 엉망으로 겹쳐 있었어요.
한 밭에 세금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던 거예요.
비유하자면, 한 자판기에서 나오는 곡식을 놓고 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서너 명씩 달라붙은 셈이에요.
농민 입장에서는 한 해 농사지어 놓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중 삼중으로 뜯겼어요.
게다가 그 권리들이 소수의 힘센 가문에게 몰려 있었죠.
그 결과 정작 나라 곳간은 텅 비고, 새로 나라를 세워도 일할 관리들에게 나눠 줄 몫이 없었어요.
정도전과 동료들이 한 일은 크게 보면 '리셋'이었어요.
겹치고 몰려 있던 낡은 권리를 거둬들이고, 한 밭에는 원칙적으로 한 사람만 세금을 걷도록 새로 정리했어요.
그리고 벼슬 등급에 맞춰 다시 배분했죠.
이 정리가 가진 힘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소수 가문에 쏠렸던 토지의 이익을 흩어서 새 나라를 이끌 신진 세력에게 경제적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나라 곳간을 다시 채워 새 왕조를 굴릴 재원을 확보한 것이었어요.
1392년 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땅부터 정리해 둔 덕분에, 새 나라는 빈손이 아니라 든든한 살림 위에서 출발할 수 있었어요.
다만 이 개혁이 모든 농민을 부자로 만든 건 아니에요.
세금 받을 권리를 다시 나눴을 뿐, 밭을 가는 사람이 곧바로 땅 주인이 된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겹겹이 뜯기던 부담이 정리됐다는 점만으로도 백성에겐 큰 변화였어요.
과전법은 정도전이 새 나라를 세우며 가장 먼저 손댄 토지개혁이에요.
핵심은 딱 하나만 기억하면 돼요.
나눈 것은 '땅'이 아니라 '그 땅에서 세금 걷을 권리'였다는 점이에요.
고려 말에는 이 권리가 소수에게 몰리고 한 밭에 여러 겹으로 겹쳐 농민이 이중 삼중으로 시달렸는데, 정도전과 조준·남은 등이 이를 거둬들여 등급대로 새로 배분했어요.
그렇게 흐트러진 살림을 다시 세운 것이 조선이라는 새 나라가 딛고 설 경제의 바닥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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