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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재상 중심 정치는 왕을 나라의 상징으로 모셔 두고, 능력을 보고 뽑은 재상—오늘날 국무총리에 가까운 자리—이 실제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정도전의 구상이에요. 왕위는 핏줄로 물려받으니 잘난 임금이 나올지 어리석은 임금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재상은 골라 쓸 수 있으니 나라의 운명을 한 사람의 혈통에 걸지 말자는 뜻이지요.
축구팀을 떠올려 볼게요.
구단주는 팀의 얼굴이자 상징이에요.
하지만 어떤 선수를 내보내고 어떤 작전을 쓸지 매 경기 결정하는 사람은 감독이지요.
정도전이 그린 조선이 딱 이런 모습이에요.
왕은 구단주처럼 나라의 중심에 앉아 상징이 되고, 실제로 나라 살림을 꾸리고 신하들을 지휘하는 일은 재상이 맡는 거예요.
정도전(1342년~1398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성리학 정치가예요.
그는 새 나라의 뼈대를 설계하면서 "권력의 운전대를 실제로 누가 잡을까"를 고민했고, 그 답이 바로 재상이었어요.
왕 한 사람에게 모든 힘을 몰아주지 않고, 학문과 경험으로 검증된 재상이 국정을 총괄하게 하자는 것—이것이 재상 중심 정치, 다른 말로 신권(臣權) 정치예요.
이유는 단순해요.
왕은 고를 수가 없거든요.
왕위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물려받아요.
그러니 현명한 임금의 아들이 어리석을 수도 있고, 아주 어린 나이에 왕이 될 수도 있어요.
나라의 운명을 태어나는 순서에 맡기는 셈이지요.
반면 재상은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를 가려 뽑을 수 있어요.
정도전이 보기에 능력이 보장되지 않는 왕보다, 검증해서 세운 재상에게 실무를 맡기는 편이 백성에게 훨씬 안전했어요.
정도전은 1395년경 《경제문감(經濟文鑑)》이라는 책에서 재상·감사·대간·수령 같은 여러 벼슬의 역할과 함께 군주가 지켜야 할 도리를 정리했어요.
왕도 제멋대로 하는 자리가 아니라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자리로 본 거예요.
그가 보기에 왕이 할 가장 큰 일은 훌륭한 재상을 알아보고 그에게 국정을 맡기는 것이었어요.
정도전의 구상에서 두 자리의 역할은 이렇게 나뉘어요.
| 구분 | 왕 | 재상 |
|---|---|---|
| 성격 | 나라의 상징, 정통성의 중심 | 실제 국정을 총괄하는 실무 책임자 |
| 뽑는 방식 | 핏줄로 세습 | 능력을 보고 선발 |
| 하는 일 | 좋은 재상을 알아보고 맡김 | 정책을 세우고 신하를 지휘 |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왕은 힘을 '내려놓는' 자리가 아니라 힘을 '맡기는' 자리예요.
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왕은 중심에 그대로 있으면서 실무의 무게는 검증된 재상이 지는 구조지요.
정도전은 이렇게 역할을 나누면 어리석은 임금이 나와도 나라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봤어요.
왕과 재상이 힘을 나눈다는 말은, 뒤집어 보면 왕의 힘을 덜어 낸다는 말이기도 했어요.
바로 이 지점에서 이방원이 정면으로 부딪혔어요.
이방원은 왕이 실권을 온전히 쥐는 강한 왕권을 원했거든요.
게다가 정도전은 왕자들이 저마다 거느리던 사병(私兵)을 없애 군사권을 나라로 모으려 했는데, 이는 이방원의 힘을 직접 겨눈 일이었어요.
결국 1398년, 이방원이 사병을 이끌고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과 그 지지자들을 죽였어요.
이것이 제1차 왕자의 난이에요.
재상 중심 정치를 설계한 사람은, 강한 왕권을 원한 이의 손에 목숨을 잃은 셈이지요.
그만큼 '왕이 실권을 쥐느냐, 재상이 쥐느냐'는 두 사람에게 목숨을 건 문제였어요.
오늘날 많은 나라가 상징적인 국왕이나 대통령을 두고, 실제 살림은 국무총리와 내각이 맡아요.
정도전의 구상과 닮은 구조지요.
그래서 그의 생각을 영국식 입헌군주제에 빗대기도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후대 사람들이 나중에 갖다 붙인 해석이에요.
정도전 당대에 '입헌군주제'라는 말이나 개념이 있었던 건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 두면 좋아요.
그가 던진 진짜 질문은 이거예요.
"나라의 운명을 한 사람의 핏줄에 맡길 것인가, 검증된 사람에게 맡길 것인가."
600여 년 전의 물음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지 않았어요.
재상 중심 정치는 왕을 나라의 상징으로 두고, 능력으로 뽑은 재상이 실제 국정을 이끌게 하자는 정도전의 구상이에요.
핵심은 왕은 세습이라 능력을 보장하지 못하지만 재상은 골라 쓸 수 있다는 데 있어요.
그래서 정도전은 왕의 가장 큰 일을 '좋은 재상을 알아보는 것'으로 봤지요.
이 생각은 강한 왕권을 원한 이방원과 부딪혔고, 결국 1398년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은 목숨을 잃었어요.
왕과 재상 가운데 누가 실권을 쥐느냐—이 한 가지 물음이 조선 초기 정치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는 것, 이것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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