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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정도전은 새 왕조를 하나의 건물처럼 여기고, 어떤 나라를 어디에 어떤 이름으로 세울지 미리 정한 설계자였어요. 조선은 칼로만 세워진 게 아니라 그가 그린 밑그림 위에 지어졌다는 뜻이에요.
집을 지을 때를 떠올려 볼게요.
벽돌을 쌓기 전에 먼저 종이 위에 설계도를 그리죠.
방은 몇 개로 할지, 문은 어디에 낼지, 이름은 뭐라 붙일지를 미리 정해요.
정도전이 조선을 세운 방식이 딱 이랬어요.
그는 군대를 이끌고 싸운 장군이 아니라, 어떤 나라를 만들지 그 뼈대를 그린 사람이었어요.
정도전(1342~1398)은 고려 말의 성리학자로,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했어요.
호는 삼봉(三峯)이지요.
보통 나라가 바뀔 때는 힘센 사람이 왕이 되고 그다음에 나라 꼴을 갖춰 가요.
그런데 정도전은 순서를 뒤집었어요.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라는 설계도를 먼저 손에 쥐고, 그 그림을 실현해 줄 사람을 찾아 나섰어요.
조선 건국의 설계란, 새 왕조의 밑그림을 사람보다 먼저 준비한 이 발상 전체를 말해요.
좋은 설계도가 있어도 튼튼한 기둥이 없으면 집을 못 짓죠.
정도전에게 그 기둥은 이성계였어요.
두 사람은 1383년 함흥에서 처음 만나요.
이때 정도전은 이성계의 잘 훈련된 군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져요.
"이 정도의 군대라면 무슨 일인들 성공시키지 못하겠습니까?"
이성계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정도전은 왜구를 무찌른다는 뜻이라고 슬쩍 둘러댔다고 해요.
하지만 속뜻은 '이 군대로 새 나라를 세울 수 있겠다'였겠지요.
설계자가 자신의 그림을 지어 줄 목수를 알아본 순간이에요.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움직여요.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권력을 잡자, 정도전도 요직에 올라 나라의 제도를 바꾸는 일에 뛰어들었어요.
마침내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며 조선이 세워졌고, 정도전은 개국 1등 공신에 올랐어요.
이때 그는 나랏일과 군사를 함께 다루는 판의흥삼군부사 같은 요직을 겸했어요.
밑그림을 그린 사람이 직접 공사 감독까지 맡은 셈이지요.
나라를 세웠으니 이제 '집터'를 정할 차례예요.
정도전은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는 일(1394년)을 이끌었어요.
새 서울을 통째로 설계하는 큰 작업이었어요.
그는 궁궐과 종묘를 어디에 앉힐지 자리를 잡고, 궁궐 안 건물과 성문·궁문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지었어요.
지금 우리가 아는 경복궁이라는 이름도 이 설계에서 나왔지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승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뒤에 두고 궁궐을 세우자고 했는데, 정도전이 반대했어요.
그 결과 경복궁은 지금의 자리에 세워졌어요.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 나라로 만들지를 두고 벌어진 설계 다툼이었던 셈이에요.
이렇게 도시의 뼈대와 이름표까지 붙인 걸 보면, 정도전이 왜 조선의 '설계자'로 불리는지 알 수 있어요.
물론 그의 설계는 건물과 도시에만 그치지 않았어요.
나라를 어떤 법으로 다스릴지 정한 《조선경국전》, 승려와 불교를 어떻게 볼지 따진 《불씨잡변》, 왕과 재상이 어떻게 권력을 나눌지에 대한 구상도 모두 이 큰 설계의 부분들이에요.
다만 그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이야기가 길어서, 여기서는 '나라 전체를 미리 그렸다'는 큰 그림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설계자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정도전은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군사에게 목숨을 잃었어요.
왕보다 재상이 실권을 쥐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강한 왕권을 원한 이방원과 정면으로 부딪쳤기 때문이에요.
그 뒤 약 300년 동안 정도전은 역적·간신으로 낮춰 불렸어요.
하지만 그가 그린 도시와 제도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지요.
그러다 조선 후기에 다시 평가가 시작돼요.
1791년 정조가 그의 문집 《삼봉집》을 다시 펴냈고, 1865년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마침내 '이 도읍을 설계한 사람'으로서 공로가 인정되어 명예가 회복되었어요.
자신이 그린 설계도 덕분에, 죽은 지 수백 년 만에 다시 이름을 되찾은 셈이에요.
조선 건국의 설계란, 정도전이 새 나라를 하나의 건물처럼 여기고 그 뼈대와 도읍과 이름을 미리 그린 일을 말해요.
그는 이성계라는 든든한 기둥을 알아보고, 한양이라는 집터를 잡고, 궁궐과 문에 이름표까지 붙였어요.
왕이 먼저 서고 나라가 뒤따라간 게 아니라, 설계도가 먼저 있고 그 위에 나라가 세워졌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그가 비극적으로 죽고 오래 잊혔어도, 그가 그린 밑그림이 지금의 서울과 조선의 틀로 남아 그를 다시 불러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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