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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간공부(易簡工夫)는 착하게 살 밑천이 이미 내 마음 안에 다 갖춰져 있으니, 바깥 지식을 끝없이 쌓는 대신 그 본래 마음을 곧바로 되찾는 쉽고 간단한 수양법을 말해요. 이치가 내 마음 안에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쉽고 간단하다'는 말이 비로소 성립해요.
먼저 사람부터 짧게 볼게요.
육구연(1139년 출생)은 남송의 학자로, 호가 상산이라 '상산선생'으로 불렸고, 마음이 곧 이치라는 심학(心學)의 문을 연 사람이에요.
몰년은 자료마다 달라서 영문 위키백과는 1192년, 중문 위키백과는 1193년으로 적어요.
이간공부의 '이간(易簡)'은 '쉬울 이'와 '간단할 간'을 붙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간공부는 말 그대로 '쉽고 간단한 공부'예요.
여기서 공부는 시험공부가 아니라, 사람이 마음을 닦아 사람다워지는 수양을 뜻해요.
왜 쉽다고 했을까요.
육구연은 옳고 그름을 가리고 남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 곧 착하게 살 밑천이 이미 내 안에 다 들어 있다고 봤어요.
지도를 새로 그릴 필요 없이 이미 손에 지도가 쥐어져 있는 셈이죠.
그러니 밖에서 지식을 산더미처럼 끌어모을 게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있는 그 마음을 먼저 또렷하게 되찾으면 된다는 거예요.
새 물을 힘들게 길어 올릴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샘의 흙탕만 가라앉히면 된다는 감각에 가깝죠.
이것이 이간공부의 핵심이에요.
1175년, 여조겸이라는 학자가 육구연과 주희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어요.
강서의 아호(鵝湖)라는 곳에서 만났다고 해서 '아호지회(鵝湖之會)'라고 불러요.
오늘로 치면 생각이 다른 두 대가가 공개 토론을 벌인 셈이죠.
이 자리에서 육구연은 이렇게 되물었어요.
"堯舜之前有何書可讀(요순지전유하서가독)", 요임금과 순임금 이전에는 대체 무슨 책이 있어서 읽었겠느냐고요.
성인이라던 요순도 읽을 책 한 권 없던 시절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데, 우리는 왜 책더미에 파묻혀야 하느냐는 물음이에요.
그는 마음을 밝혀 본성을 보는 명심견성(明心見性)만으로 충분하다고 했어요.
이 태도에는 도교의 영향도 있었어요.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육구연은 도교의 '간결함'과 '자발성'이라는 생각, 그리고 근본을 세우려면 지나친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는 믿음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마음은 원래 맑은데 욕심이 흙탕을 일으킬 뿐이니, 흙탕만 가라앉히면 맑은 물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거죠.
그래서 이간공부는 게으름과는 정반대예요.
이것저것 손대는 대신 하나를 붙잡되 그 하나를 곧게 붙잡는 공부라,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더 오래가요.
같은 유학자여도 주희와 육구연은 공부하는 길이 달랐어요.
주희는 사물마다 그 사물의 이치가 따로 있으니, 하나하나 파고들어 앎을 넓혀 가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강조했어요.
책을 많이 읽고 두루 따져야 이치에 이른다는 거죠.
육구연은 이 방식을 '지리파쇄(支離破碎)'하다고 비판했어요.
'지리'는 갈래가 너무 많아 자잘하게 흩어졌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주희는 육구연의 학문이 너무 간략해서 텅 비고 엉성하다(공소·空疎)고 봤고요.
그래서 아호지회는 어느 한쪽이 이겼다기보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의 길을 못마땅해하며 갈라선 자리였어요.
표로 견주면 이래요.
| 구분 | 주희의 공부 | 육구연의 이간공부 |
|---|---|---|
| 이치가 있는 곳 | 사물마다 하나하나 | 내 마음 안에 |
| 공부하는 길 | 격물치지, 널리 따져 앎을 넓힘 | 본래 마음을 곧바로 되찾음 |
| 상대편 평가 | 육구연은 너무 간략해 공소하다 | 주희는 너무 자잘해 지리하다 |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요.
이간공부가 '쉽다'는 건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에요.
이치가 내 마음에 있다는 전제 위에서라야 성립하는 말이라, 그 전제를 빼고 "공부 안 해도 된다"로 읽으면 완전히 오해예요.
오히려 남의 말과 책에 기대지 않고 내 마음 하나를 똑바로 세워야 하니, 쉬운 만큼 정직하게 마주해야 하는 길이죠.
이간공부는 육구연이 내놓은 수양의 방법이에요.
착하게 살 밑천이 이미 내 마음에 다 갖춰져 있으니, 바깥 지식을 산더미로 쌓기보다 그 본래 마음을 곧게 되찾는 것이 참된 공부이고, 그 길은 쉽고 간단하다는 거예요.
그가 아호지회에서 던진 "요순 이전에 무슨 책을 읽었겠는가"라는 물음이 이 생각을 한마디로 보여 줘요.
주희가 사물마다 이치를 따져 넓혀 가는 길을 택했다면, 육구연은 하나를 곧게 붙잡는 길을 택한 셈이죠.
다만 '쉽다'가 '게을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이치가 마음 안에 있다는 전제가 먼저라는 것만 기억하면 이간공부를 오해 없이 붙잡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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