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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눈앞의 사물 하나하나의 이치(理)를 끝까지 따져 밝히는 공부를 오래 쌓다 보면, 어느 날 앎이 환하게 트여 세상 이치가 통째로 보인다는 주희의 공부법이에요. 앎은 머리로 단번에 깨치는 게 아니라 사물을 하나씩 파고들며 만들어진다는 뜻이지요.
혹시 레고 설명서 없이 블록 한 봉지를 통째로 받아 본 적 있나요?
처음엔 막막하지만 블록을 하나씩 뒤집어 보고 어디에 끼워지는지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건 이렇게 조립되는 거구나' 하고 전체 모양이 보여요.
주희가 말한 격물치지가 딱 이런 공부예요.
격물치지는 네 글자를 둘로 나눠 읽으면 쉬워요.
격물(格物)은 '사물(物)에 나아가 이치를 끝까지 파고든다(格)'는 뜻이고, 치지(致知)는 '그렇게 해서 앎(知)을 지극한 데까지 이르게 한다(致)'는 뜻이에요.
즉 사물을 하나하나 파고들어 그 속에 든 이치를 밝히면, 내 앎이 점점 넓고 깊어진다는 말이지요.
주희(1130~1200)는 송나라 때 유학을 집대성한 학자인데, 이 격물치지를 자신이 사서(四書)로 확정한 『대학(大學)』에 나오는 핵심 공부 단계로 세웠어요.
주희 생각의 바탕에는 '세상 모든 것에는 그것이 그러한 까닭, 곧 이치(理)가 들어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나무가 자라는 데도 이치가 있고, 부모를 섬기는 데도 이치가 있고, 물이 아래로 흐르는 데도 이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이치는 내 머릿속에서 상상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사물을 마주해 하나씩 확인해야 드러난다고 봤어요.
그래서 주희는 공부를 '내 마음만 들여다보는 일'로 끝내지 않았어요.
밖으로 나가 사물과 일과 책을 두루 살피라고 했지요.
실제로 그는 산 정상에서 조개 화석을 발견하고는 '이 지역이 옛날엔 바다였다가 솟아오른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는데, 과학사학자 조지프 니덤은 그를 '화석을 화석으로 알아본 최초의 사람'이라 평가하며 서양보다 약 400년 앞섰다고 봤어요.
사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까닭을 캐묻는 태도, 그게 바로 격물이에요.
그렇다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조사해야 앎이 완성되는 걸까요?
그러면 평생을 써도 부족하겠지요.
주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오늘 사물 하나의 이치를 밝히고 내일 또 하나를 밝히는 식으로 꾸준히 쌓다 보면, 어느 날 마음이 확 트여 여러 이치가 하나로 꿰뚫리는 순간이 온다고 했어요.
이걸 흔히 '활연관통(豁然貫通)', 즉 막혔던 게 뻥 뚫려 하나로 이어진다고 표현해요.
마치 외국어 단어를 하루에 몇 개씩 외우다 보면 어느 날 문장이 통째로 들리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해요.
개별 조각을 충분히 쌓아야 전체 그림이 보인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희의 공부법은 두 축으로 요약돼요.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다잡는 거경(居敬)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캐는 궁리(窮理)예요.
이 둘을 합쳐 거경궁리(居敬窮理)라 부르고, 그 안에서 격물치지가 궁리의 핵심 방법이 돼요.
또 주희는 먼저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바르게 행할 수 있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강조했어요.
아는 게 앞서야 행함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격물치지를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일화가 있어요.
훗날 명나라 학자 왕양명이 주희 말대로 이치를 파악해 보겠다며 대나무를 며칠이나 뚫어지게 바라봤는데, 이치는 안 보이고 병만 났다는 거예요.
이 일화는 주희식 격물을 비판하는 예로 곧잘 인용돼요.
그런데 학자 전목(錢穆)은 이걸 다르게 봤어요.
왕양명이 아무런 물음이나 가설도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한 게 문제였다는 거예요.
격물은 무작정 응시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럴까'를 물으며 따지는 공부인데, 그 질문이 빠졌다는 지적이지요.
| 구분 | 주희의 격물 | 왕양명이 빠진 함정 |
|---|---|---|
| 태도 | 물음과 가설을 품고 따진다 | 질문 없이 그저 바라본다 |
| 방법 | 사물을 두루 살펴 이치를 캔다 | 대상 하나만 응시한다 |
| 결과 | 이치가 쌓여 트인다 |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
주희의 격물치지는 800여 년 전 이야기지만 공부의 태도로 읽으면 지금도 살아 있어요.
궁금한 것을 대충 넘기지 않고 '왜 그럴까'를 하나씩 캐물어 확인하는 습관, 머릿속 짐작이 아니라 실제 대상을 마주해 앎을 쌓는 자세가 그것이지요.
다만 주희의 목표가 순수한 지식 탐구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알아 둘 만해요.
그는 "聖賢千言萬語,只是教人明天理、滅人欲(성현의 온갖 말씀은 다만 사람들에게 천리를 밝히고 사사로운 욕심을 없애도록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이라 했어요.
이치를 밝히는 공부가 결국 바르게 사는 길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주희의 격물치지를 근대 과학의 방법에 가깝다고 보는 학자(후스, 조지프 니덤)도 있고, 결국 원소나 인과법칙 같은 추상 개념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사물을 파고들어 앎에 이른다는 그 발상이 오래 논쟁을 부를 만큼 묵직했다는 뜻이지요.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 하나하나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격물) 앎을 지극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치지) 주희의 공부법이에요.
세상 모든 것에 이치가 들어 있으니 밖으로 나가 하나씩 확인해야 하고, 그렇게 쌓다 보면 어느 날 여러 이치가 하나로 트이는 활연관통이 온다고 봤지요.
마음을 다잡는 거경과 이치를 캐는 궁리가 두 축이고, 먼저 알아야 바르게 행한다는 선지후행이 뒤를 받쳐요.
왕양명의 대나무 일화처럼 질문 없이 바라보기만 하면 격물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이 공부의 끝이 바르게 사는 데 있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하면 격물치지가 한결 또렷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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