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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중진리설'은 철학에서 참인 것과 종교에서 참인 것이 서로 어긋나도 괜찮다는 생각을 말해요. 그런데 정작 이븐 루시드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 철학과 계시 둘일 뿐 도착하는 진리 자체는 하나여서 서로 모순될 수 없다고 봤어요. '이중진리'라는 이름은 훗날 유럽이 그에게 덧씌운 딱지에 가까워요.
이븐 루시드는 1126년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1198년에 세상을 떠난 이슬람 철학자예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거의 전부에 꼼꼼히 해설을 달아서, 서양에서는 이름 대신 그냥 '주석가(The Commentator)'라고 불렸을 정도였어요.
'이중진리설'을 쉽게 그려 볼게요.
같은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둘 있다고 해봐요.
그런데 한쪽 길로 오르면 산꼭대기가 '있다'고 나오고, 다른 길로 오르면 '없다'고 나온다면 이상하겠죠.
이중진리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예요.
철학으로 따지면 참인데 종교로 따지면 거짓인, 서로 반대되는 두 진리가 따로 있어도 괜찮다는 주장이거든요.
예를 들어 '철학적으로는 세계가 영원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세계에 시작이 있다'는 식으로 정반대 결론을 동시에 붙들어도 된다는 거예요.
'이중진리설 논쟁'은 바로 이 아슬아슬한 생각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에요.
재미있는 건, 이 주장을 실제로 편 사람이 이븐 루시드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는 1178년에 쓴 《결정적 논고》(Fasl al-Maqal)에서 오히려 정반대로 말했어요.
진리에 이르는 길은 철학과 계시(경전) 두 가지지만, 도착점인 진리는 하나여서 '진리는 진리와 모순될 수 없다'는 거였죠.
앞의 등산 비유로 돌아가면, 길이 둘이어도 꼭대기는 하나라는 이야기예요.
두 결과가 달라 보인다면 그건 진리가 둘이어서가 아니라, 한쪽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럼 철학의 결론과 경전의 글자가 부딪치는 것처럼 보일 땐 어떻게 할까요?
이븐 루시드는 경전을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속뜻으로(알레고리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깊이 읽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훈련된 철학자의 몫이라고 했죠.
그는 진리를 전하는 말하기 방식도 셋으로 나눴어요.
| 방식 | 대상 | 특징 |
|---|---|---|
| 수사적 | 대중 |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 경전이 쓰는 말투 |
| 변증적 | 신학자·율법학자 | 서로 따지고 반박하는 토론 |
| 논증적 | 철학자 | 논리로 차근차근 증명 |
같은 진리라도 듣는 사람에 맞춰 다르게 전할 뿐, 진리가 여러 개인 건 아니라는 뜻이에요.
문제는 이븐 루시드가 죽은 뒤 유럽에서 벌어졌어요.
그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은 미카엘 스코투스 같은 학자들이 라틴어로 옮기면서 13세기 파리와 파도바 대학으로 퍼졌어요.
이 흐름을 '라틴 아베로에스주의'라고 불러요.
시제 드 브라방, 다키아의 보에티우스 같은 학자들이 앞장섰죠.
이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루시드의 결론을 깊이 파고들자, 교회 쪽에서는 '그럼 신앙과 반대되는 것 아니냐'며 긴장했어요.
이때 나온 해명 아닌 해명이 '철학으로는 이렇게 결론 나지만, 신앙은 신앙대로 지키겠다'는 태도였어요.
반대하는 사람들 눈에는 이게 곧 '진리가 두 개'라는 위험한 소리로 비쳤고, 그래서 '이중진리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거예요.
1270년 파리의 주교 에티엔 탕피에가 명제 15개를, 1277년에는 무려 219개를 골라 단죄했어요.
여기서 꼭 기억할 게 있어요.
이 단죄는 이븐 루시드라는 사람을 벌준 게 아니에요.
그는 이미 1198년에 세상을 떠났고, 단죄 대상은 파리에서 돌던 특정 주장들이었어요.
그러니 '교회가 이븐 루시드를 단죄했다'고 말하면 오해예요.
이 논쟁 때문에 이븐 루시드를 '종교를 버린 이성주의자'로 오해하기 쉬워요.
서양에서 그를 '이성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른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별명은 훗날 라틴 그리스도교 세계가 붙인 거지, 본인 생각과는 결이 달라요.
이븐 루시드는 오히려 철학이 이슬람 율법 안에서 허락되며, 재능 있는 일부에게는 도리어 의무라고 논증한 사람이에요.
신앙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 신앙과 철학이 같은 진리를 향한다고 믿은 거죠.
그러니 '이중진리설'은 그의 주장이라기보다, 그의 철학을 받아들인 유럽 사람들의 태도에 붙은 딱지에 가까워요.
정작 원작자는 '진리는 하나'라고 못 박았으니, 어찌 보면 억울한 이름표인 셈이에요.
이중진리설은 철학의 진리와 종교의 진리가 서로 어긋나도 된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이븐 루시드 본인은 정반대였어요.
길은 둘(철학과 계시)이어도 도착하는 진리는 하나이고, 서로 모순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죠.
부딪쳐 보이면 경전을 속뜻으로 읽어 풀면 된다고 했고요.
'이중진리설'이라는 이름과 1270년·1277년 파리의 단죄는 모두 그가 죽은 뒤 유럽에서 벌어진 일이라, 이름만 보고 그를 '진리가 둘이라 말한 사람'이나 '반종교 사상가'로 묶으면 그의 진짜 주장을 놓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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